단편소설
노인에게 새벽은 잔인했다.
창백한 달빛이 창을 두드리면 노인의 꿈은 끝이 났다. 가까스로 돌아간 어머니의 치마폭도, 마당의 매화나무도, 서툰 걸음으로 쫒아가던 아버지의 뒷모습도 모두 흩어졌다. 목구멍의 가르릉 거리는 가래침 소리와 함께 방금 뵌 아버지보다 늙은 아들이 누워있었다.
이제는 서툰 걸음도 하지 못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늙고 늙고 늙은 몸.
세상은 푸른 달 아래 모두 웅크렸다. 바람조차 사뿐히 지나가는 시간. 이 시간이면 모두가 혼자가 된다. 노인도 덩그러니 밤 가운데 놓였다. 오늘도. 노인은 삶을 되짚었다. 분명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이 되었는데 떠오르는 건 단 5일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짚어도 2주를 채울 수가 없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할수록 정말 자신이 그 순간에 서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노인은 봄을 사랑했었다. 무뚝뚝하신 아버지도 마당에 매화나무 꽃봉오리가 트일 때면 으레 노인을 깨워 같이 보았다. 매화꽃은 언제나 달빛 아래서 피어났다. 마당의 하이얀 매화 잎은 달빛을 받으면 푸르스름하게 빛이 났다.
아니. 노인은 그 순간을 사랑하는 건지도 몰랐다. 달빛아래. 하얀 매화나무 앞. 아버지의 옆자리. 사무치도록 그리운 건 아버지인가. 매화인가. 어린 시절인가.
노인은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느지막이 움직이는 새벽달을 보자면 시간이 흐르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창을 열었다. 병원 화단은 창백하게 빛이 났다. 그리고 바람에 부풀어진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부드러운 봄바람이 노인의 뺨을 두드렸다. 노인은 어둠속에 덩그러니 놓여 세상을 바라봤다.
하이얀 달빛 아래. 매화나무 앞. 창가 끄트머리.
밤에는 세상이 은은한 빛을 낸다. 그리고 포근한 바람이 가지를 감싸면 매화꽃은 다시 하얗게 하얗게 돋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