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의 공간이 3차원으로 확장되는 마법
치앙마이에 와서 루틴대로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지난번 시장 안에서 누군가 먹고 있던 빨간 국물의 타이 누들로 아침을 생각하고 치앙마이 게이트 마켓으로 향했다.
역시 새벽 시장은 잠들었던 생명을 깨우고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인 공간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얼큰하고 따뜻한 국수를 기대하였지만 미지근하고 얼큰하지도 않고 국물도 그저 그런 치앙마이 와서 처음으로 실패를 안겨준 식당을 뒤로하고 실패한 아침을 커피로 복구하고자 커피 맛집을 찾아 나섰다.
두리번거리다 구글 맵에서 추천한 카페가 있는 시장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바로 옆 골목밖의 시장통과는 완전히 다른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골목이 나타났다.
마치 해리포터가 마법 학교로 가기 위해 벽을 향해 돌진하고 이내 다른 세계로 가는 기차역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다른 세계로 와버린 느낌이다.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골목길은 걸을 때마다 또 다른 속살을 내게 보여 주고 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노랑 감성의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여유롭게 단아한 골목길을 바라보며 실패한 아침 국수에 처절한 복수를 해주었다.
두 개의 비닐봉지에 시장에서 산 망고, 망고스틴, 사과, 복숭아를 한 아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망고스틴을 지그시 누르면 과일의 외피가 열리면서 짙은 보라색 안에 마늘 모양의 하얀 과육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치앙마이 시장 뒷골목이 품고 있는 새로운 세상처럼 열리며 우아한 달콤함과 상큼함을 선사해 준다.
동네 산책의 지경을 넓혀가던 내게 오늘은 치앙마이에 오면 ”Must See” 제일의 핫스폿으로 알려진 도이 수텝(Doi Suthep)으로 가기로 했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던 내게 도이 수텝은 나의 “Must See”의 항목에는 없었다.
그 전날 방문한 치앙마이 문화센터에서 도이 수텝은 치앙마이 문명의 젖줄기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아마 방문하지 않았을 장소였다.
어느 곳을 여행하던 로컬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 여행해 보자는 나의 여행 철학대로 오늘은 치앙마이 사람들이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쌩태우(트럭을 개조한 마을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도이 수텝까지는 산길 포함 20km 거리의 동네 마실이인 나에겐 꽤 먼 거리이다.
감사하게도 치앙마이 뉴시티에 해당하는 님만해민 내의 가장 큰 쇼핑몰 앞에서
도이 수텝으로 가는 쌩태우가 많은 치앙마이대학교 앞으로 가는 무료 생테우를 탈 수 있었다.
8명의 수용인원이 다 타야 출발한다는 생태우 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썽태우 앞의 길거리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서양 커플과 로컬 사람 몇 명의 썽태우 동지들이 합류하고야 쌩태우는 출발하였다.
옆 사람과 엉덩이가 붙을 정도의 트럭 뒷자리의 좁은 좌석에 앉아 도이 수텝에 오르는 길을 바라보았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길었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30여 분을 달려 도이 수텝 정상에 위치한 왓 프라탓 사원(Wat Phra That) 입구에 도착했다.
썽태우를 같이 타고 온 서양커플과 오르는 길을 찾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온 젊은 커플이었다. 출장으로 여행으로 또 사촌들이 살고 있어 여러 번
다녀온 시드니에서 온 친구들이라 서로 나눌 얘기가 많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었다.
전공은 Language Pathologist(언어 치료사)
나에겐 생소한 단어였고 전공이었다.
자신도 어린 시절 언어표현 등에 문제가 많아 언어 치료사로부터 치료와 상담을 받았고
그래서 선택한 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달리 보였다. 자기의 어릴 적 아픈 경험으로 일찍 자기의 길을 발견하고 준비하고 있는 그 친구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우리 땅의 젊은 세대들을 떠올려 보았다.
남의 시선이나 부모의 기대가 아닌 자기만의 시선과 경험으로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우리 땅의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기원하면서...
낯선 이를 통해 낯선 분야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도
여행에서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신성한 곳이라 신발을 벗고 사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치앙마이 어느 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금빛 부처를 지나쳐 치앙마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사원의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해발 1676M의 도이 스텝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사원의 테라스에서 눈앞으로 대평야와 지평선 위로 점점이 박힌 문명과 삶의 공간들이 펼쳐졌다.
지난 5일 동안 올드시티 내의 땅을 거닐며 보았던 2차원의 치앙마이가 3차원의 공간으로 내 눈앞에서 확장된다.
치앙마이 문화센터에서 보았던 치앙마이 역사, 문화, 정치, 종교, 우주론의 머릿속 1차원 지식과 정보가 3차원의 세계로 확장되고 그 의미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도이 수텝은 치앙마이 건국자 밍라이 왕이 14세기말 린나 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통합을 통한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사원을 건축하였고 생태학적으로도 실제 치앙마이 수원의 근원지로 수로(해자)와 농경 용수, 생활용수까지 공급하는 치앙마이 문명의 젖줄기라 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지난 며칠 동안 땅을 밟으며 내 오감으로 느낀 치앙마이가 치앙마이 문화센터가 알려준 지식의 렌즈와 결합하여 그 지경이 넓혀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님의 말씀에 이번엔 반론 없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시원한 도이 수텝과는 달리 산에서 내려오니 후덥지근한 기운이 땅과 대기를 달구고 있었다.
오토바이 뒤에 타 수로와 성벽을 바라보며 해지는 치앙마이 올드시티 속을 바람을 가르며 영화 속 주인공처럼 숙소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후덥지근하고 땀에 전 끈적한 몸을 차를 타고 가면서 에어컨으로 샤워하며 갈 것인가?
잠시 고민하였다.
땀에 전 몸이 에어컨과 차라는 문명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의 아우성을 따르기로 했다.
볼트라는 차량앱을 통해 호출한 차에 올라타 차가 쇼핑몰을 돌아 유턴을 하는 그 1~2분 사이
차 지붕을 때리는 맹렬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앙마이에 와서 5일 동안 차 지붕을 뚫을 것 같은 이런 맹렬한 폭우는 처음이었다,
오토바이 뒤에 타서 이 비를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Thanks God!
도이 수텝의 치앙마이 수호신이 자신을 방문한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
그 폭우 속에서 요람에 잠든 아기처럼 편안하게 마법처럼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밤에는 왠지 도이 수텝에서 치앙마이 강으로, 수로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꿈에서 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