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의 미학 2: 지혜의 숲 산책 1(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 책에 바치는 헌사

by 리빙북

그런 경험이 있는가?


아름다운 번안 시나 번역된 책을 읽다가 번역본이 아닌 그 작가의 언어 원문으로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짧은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그런 책이다.


원문의 느낌은 어떨까를 생각하며 체코어를 배워볼까 하는 가당치 않은 생각도 해보았다.

얼마 전 깊이 있는 서평을 쓰시는 블로거의 글을 보다가 이 책의 서평을 읽고 바로 그 저녁 이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그 여운이나

책 속의 장면들이 영화처럼 다가온다


이 책에 대하여 감히 서평을 쓸 엄두조차 못 내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낯설고 기이하고 심오하고 판타지와 현실이 오가는 이 책을 낯섦의 미학이란 관점의 높은 곳에 올려 소개하고픈 마음이 이 후덥지근한 여름의 한가운데서 느껴졌다.


이 소설을 어떤 류의 소설로 분류해야 할까?


자전적 실존적 소설, 현실과 판타지가 어우러지는 판타지 소설?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또 어떤 부류에도 속할 수 있는 소설.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저자는 체코의 보후밀 흐라발이다.


수십 년간의 공산주의 체제 감시 아래 글을 써온 작가는 때론 정식 출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저서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던 고국 체코를 떠나지 않고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지하에서 문학이 주는 삶의 구원을 바라보며 글을 썼다.


법학을 공부하였지만 창고업자, 배달부, 제강소 노동자, 철도원, 단역배우, 폐지 인부 등으로 삶을 이어갔고 그 삶 속에서 실존의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이 소설도 그런 측면에서 실존적 자전 소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역자의 설명(이창실)에 의하면 1977년 프라하 지하 출판으로 유통되다가 1980년 독일에서 출판되었고 체코에서는 1989년에야 정식 출판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쥐들과 파리떼들로 둘러싸인 더럽고 덥고 끈적끈적한 지하 폐지 작업장에서 날마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폐지와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하는 폐지 압축공이다.


그 폐지 더미 속에서 보석과 같은 책들을 찾아내고 그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천국과 같은 기쁨을 맛보며 행복에 젖어 산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1장-

주인공은 고단한 육체의 고통을 잊고 책에 몰두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또 마시고 책을 읽는다.


멕주가 아닌 그가 책을 마시고 책이 그를 마시고 그 안에서 철학자도 현자도 만난다.


술에 취하고 책에 취하며 프라하 거리를 걷는 그와 함께 나도 취한 듯 프라하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삶의 환경은 작업장도 집도 모두 이 세상의 밑바닥 같은 더럽고 좁고 위태로운 공간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책에서 그곳은 화려한 프라하 거리보다 안전하고 마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머물 수 있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진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하였던 연인도 집시도 모두 가슴 아픈 젊은 날의 사랑의 기억이지만 그 안에 해학과 유머와 따스함이 배어있다.


이 소설을 하나의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것 바로 한 모습 안에 현실과 판타지가 더러움과 아름다움이, 아련한 슬픔과 함께 해학과 유머가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리라.


1960년 초 한국을 방문한 영국기자가 "한국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는 악담을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때론 쓰레기장같이 냄새나고 혼탁한 이 세상이 한송이 장미꽃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수많은 꽃과 나무가 있는 화원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소망과 판타지를 갖게 된다.


뜨겁고 무더운 이 여름 한가운데 이 기묘하고 낯선 지하의 판타지 공간으로, 가로등이 일렁이고 음악이 흐르는 프라하 거리로 떠나보는 건 어떤가?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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