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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꺅뿡 Mar 20. 2020

#1. 진짜 나를 마주하기까지 걸린 시간, 30년

30살의 첫걸음



1등은 아니지만 꼴등은 아니다.
천재는 아니지만 바보는 아니다.





부모님은 한 번도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공부를 꼭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주지도 않았다. 학원에 보내지도 과외를 시키지도 않았다. 대신 항상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려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셨다.


(내가 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켰던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수영이었다. 당시에는 딸이 물에 빠져 죽어도 괜찮냐고 펑펑 울었지만 지금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는 하교 후 만화책방에 들러 만화책을 빌리고 오락실에 가서 펌프를 다리 힘이 풀릴 때까지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곤 집에 와서 만화책을 읽다가 잤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많은 친구들이 종합반 학원을 다녔고, 새벽까지 과외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하교 후 싸이월드, 크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험기간에는 (양심 상) 독서실에 가서 엎드려 잠을 잤다. 물론 조금씩 공부도 했지만 수업 시간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중간에 잠시 미국을 다녀왔고 그 후 고등학교는 일반학교를 가지 않았다. 내 삶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해야겠다.)


나는 엄마의 조건부 허락으로 귀를 뚫기 위해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밤을 새 가며 3일 만에 다 풀 정도로 동기부여가 확실하면 어떻게든 이뤄내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동기부여가 없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후 남는 것은 그냥 평균 점수와 반등수, 전교등수뿐이었다. 그 숫자들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사는 것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히'는 편했다. 그 과정의 전후가 모두 편했다.


사실 대학도 수능 공부가 '귀찮아서' 수시로 입학했다. '적당히' 준비하고 '근자감'으로 대답하니까 붙었다. 수능 전 날 놀았고, 수능 볼 때 졸았다.


나는 그냥 적당히 공부했고 적당히 성적이 나왔다.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올A+을 받는 것보다 적당히 공부하고 놀러 다니면서 A~B+ 나오면 만족했다. 대학시절 나의 '적당히'의 기준은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공강 시간을 활용하여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단 해가 진 후로는 놀아야 직성이 풀렸다. 카페에 가서 멍을 때리든, 바닷바람을 쐬며 맥주를 마시든, 단골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든, 하다못해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더라도 일단 도서관 같은 곳에 앉아있는다거나 뇌를 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단, 가끔 밤을 새워서 과제를 하는 일은 있었다. 사실 나는 순수학문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실기 과제가 더 많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의 '적당히 공부법'이 잘 먹혔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뇌를 쓰는) 공부하기 싫어서 그 전공을 선택한 것도 없지 않아, 사실 많았다. 가끔 후회도 했다.


어째튼 나는 당연히 수석 졸업은 아니었고 4.5만점에 3.89점으로 졸업했다. 4점은 어떻게든 넘겨보려 했는데 나중에 졸업전시 준비하다가 진빠져서 만사가 귀찮아졌다. 결국 졸업도 적당히 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졸업 후를 생각하지 않았었다. 너무 현실감각 없이 적당히 살던 나는 졸업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다들 한번쯤 보던 싸트가 뭔지, 어떤 기업들에 어떤 직무가 있는지, 취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정말 몰랐었다. 핑계1은 졸업전시 준비하느라 바빴다였고, 핑계2는 당시 가족이 모두 외국에 있고 나만 한국에 있어서 외로웠다였다.


그때라도 잠시 나의 시계를 멈추고 나를 되돌아보고 깊은 고민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당시의 나는 적당히 그 고비를 넘기고 싶었다. 사회적 시선에서 뒤처지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덜컥 대학원 원서를 냈다. '부모님도 했으니까'라는 생각과 '스포츠를 좋아하니까'라는 정말 단순한 선택이었다. 일사천리, 속전속결. 하루? 이틀?만에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휘갈겨쓰고 보냈다. 운이 좋다고 해야하는건지, 덜컥 합격했다.


첫 취업도 비슷한 느낌으로 '휘리릭' 했다. 대학원을 다니다가 연구비가 내 성에 안 차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마음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 2년 차에 그냥 지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회사생활과 대학원을 병행하느라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공계도 아니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사회의 시선에 맞추어 넣었다. '적당히'라는 나의 기준에서.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보다는 주변의 흐름을 따라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적당히 공부하며 초중고를 졸업했고 왜 대학을 가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모두 가니까 나도 대학에 진학하고 적당한 학점으로 졸업했다. 혼자 한국에서 백수가 되는 것이 무서워서 적당히 괜찮은 타이틀의 석사 학위를 땄다. 다들 취업하니까 나도 적당히 취업해서 일을 했다. 분명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나름의 노력을 했고, 뿌듯했고, 즐거웠고, 그 가운데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인가?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맞다, 혹은 아니다 그 어느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모르겠으니까.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 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 있긴 했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저 적당히 사는 것에 익숙해졌고 노력, 열정, 열심 등의 단어는 점점 나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니 왜 이렇게 되었을까.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지내면 그냥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서 적당한 가정을 이루고 적당한 때에 은퇴해서 적당하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한 적당한 삶이 어떤 사람한테는 안정적이고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닐 것이란 것을 알았다. 한번쯤은 가슴 아픈 사랑도 해보고 싶고, 한번쯤은 남들이 미쳤다고 하는 도전도 해보고 싶었다. 1살이라도 어릴 때, 더 후회하기 전에.


그 순간부터 나는 적당한 것들이 싫어졌다. '적당히'를 몰랐을 때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24시간이 부족했고, 100년을 살아도 부족할 것 같았다.


'적당히'를 모르던 시절 세계일주를 꿈꾸며


억지로 하지 말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찾아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라.


부모님이 항상 나한테 했던 말씀이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 고민을 난 이제 시작했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쓰기 위한, 취업 자기소개서를 위한 고민이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한 고민.

15년 전에,

10년 전에 했어야 할 고민.


나는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마주한다, 30년 만에.

적당히가 아니라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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