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와 해무 속, 아직 남아 있는 봄을 향해

by sook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영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해무로 가득 차 있다.

차창 밖은 온통 회색빛 안개에 잠겨 있고,

나는 앞차의 불빛을 겨우 따라가며 길을 나선다.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 멀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가까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간신히 바라보며 하루를 버틴다.

분명히 길은 이어져 있을 텐데,

지금은 그저 앞에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할 뿐이다.

비와 안개처럼 짙은 삶의 무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리고 문득,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아챈다.

이미 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걸.

벚꽃이 만개했고, 봄꽃들이 저마다의 색과 향기를 뽐냈을 그 시간들.

하지만 나는 그 찬란한 계절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도, 몸의 여유도 부족했던 탓일까.

봄은 그렇게 다가와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 온전히 머물지 못했다.


지금 내리는 이 비에 꽃잎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걸 보며,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을 적신다.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쉽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다행히도,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이라는 따뜻한 시간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봄을 느껴보고 싶다.

이제라도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눈앞의 꽃들을 바라보고,

마음속 봄을 다시 피워보고 싶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작은 빛 하나를 따라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나아가고 있으니까.


해무가 자욱한 영도의 아침.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나는 지나간 계절과 내 마음의 풍경을 돌아본다.

아직 남아 있는 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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