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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이 무엇인지 (1)

by 블랙홀

친구에게 받은 전국대회 입상 사본을 탐독한 다음 해에 난 현장연구 실천사례 3등급, 도인성실천사례에서 2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출발이었지 마침표가 아니었다.


입상자들의 명단은 공문으로 도내에 뿌려지니 그걸 눈여겨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잠재적 의미의 멘토들이다.

멘토는 자신의 멘티를 찾아서 어장관리를 하며 키워준다.

독불장군은 없으니 자신에게 충성할 수 있는 멘티가 많아야 그 바닥에서 파워 있는 멘토가 되기 때문이다.

이 멘토는 도교육청의 각 국장 내지는 과장, 지역교육장, 또는 전문직에서 현장으로 나온 교장들이다. 그런 멘토가 내게도 생겼다.

바로 우리 학교 교장샘이었다.






교육장을 하다 내려온 연구통이라서 황금인맥을 갖고 있어 내게 도움을 주었다.

보고서를 봐 달라고 하면 놓친 부분을 꼭 집어주고, 막히는 부분은 방향을 잡아주었다. 또한 점수를 딸 수 있는 단체에 가입할 수 있도록 소개도 시켜주었다.


멘토가 되어주는 상급자는 열심히 하려는 후배 겸 부하직원을 조언해준다.

어떤 교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멘티의 상황도 달라진다.

멘티들끼리는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낼 수 있었지만 멘토의 줄기는 오픈시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키워주는 멘토를 건너뛰고 직접 그 윗분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멘토 교장들은 열심히 하고 욕심이 있는 교사는 전근 시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본인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든든한 동기나 선. 후배에게 부탁하여 길을 터주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 초빙제란 것이 있었다.

학교에 필요한 교사를 초빙이란 이름으로 꼭 집어 데리고 오기 위함이다.

그렇게 초빙되어 간 교사는 현임자를 건너뛰어도 상관없다. 주요 부장 보직과 함께 중책을 맡기고 외부추천에도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승진 라인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내가 키운 내 새끼, 내 후배는 확실히 끌어준다는 것이 교육계의 라인이었다. 단, 멘티가 멘토를 잘 따라올 수 있는지를 눈여겨본 후 손을 내민다.

그러다 보니 라인을 어떤 쪽으로 갈지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멘토의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라인이 노출되면 상대 라인에서는 철저하게 배제시키니 알고 보면 고양이 세계와 비슷했다.






라인은 크게는 전교육감, 현 교육감으로 나뉜다.

저무는 라인을 타면 더 이상 크기가 어렵고, 현 실세 라인을 타면 승승장구하는 것이니, 내 멘토의 라인은 곧 내 라인이 되었다. 정치판과 갈은 이치라면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하나 교육계는 지방으로 갈수록 은근 파벌이 심하다.

서울이나 경기도는 워낙 넓은 데다가 전국에서 모인 집단이라 아무래도 파벌이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

동향 선후배인지 같은 대학 출신인지, 넓게 보면 초등인지 중등인지에 따라서도 파벌이 생긴다. 교육감이 초등 출신이면 초등 교육장이 많고 중등이면 중등 교육장이 많아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출발에서부터 갈라지는 내막을 모르고 양쪽에서 내미는 손을 모두 잡았다면 양쪽에서 버림받기 십상이다.






부부교사는 정보가 빠르니 그걸 저울질해서 지름길로 가지만, 나처럼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은 그만큼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교장과 우리 지역교육장이 반대 라인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느 정도 점수를 채워 발을 내디딜 때야 알게 되었다.


나는 교장샘의 추천으로 장학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학요원은 1년씩 활동하지만 한번 장학요원이 되어 별 탈이 없으면 몇 년을 해도 상관은 없다.

어쩌면 새끼 장학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교사들이 교감 승진이나 전문직이 되려면 거치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든 추천서에 스펙처럼 쓸 수 있다.


연구학교 교사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교육청의 자료 개발에 참여한다.

퇴근 후에는 밤늦게까지 교육청에 들어가서 바쁜 장학사의 일을 도와준다.

피곤에 절어 정작 수업에 소홀한 사람도 많지만 현장에서는 유망한 능력자로 본다. 부러워하는 동료들도 생긴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분야별 장학자료를 제출해서 실적을 쌓기도 한다. 퇴근 후 모임을 갖고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장학요원이 되면 멘토의 라인이 분명해진다.

같은 동기장학사끼리도 라인이 다르면 서로 견제하는 경계태세를 갖추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이지만 뒤로 씹히는 건 비일비재하다.


첫 모임 때는 교육장과 소속 모든 장학사를 초대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최대한 얼굴을 알리고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일종의 그런 자리이다.

적당히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하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자리가 눈도장을 찍을 수 확실한 자리가 된다. 이 바닥의 관례는 2차든 3차든 파장해야 할 때까지 함께 해야 진정한 정보가 나오고,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엔 남자고 여자고 구별이 없다.






그래서 관운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내 라인이 출발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교육감이라면 내게는 시간이 많으니 라인이 바뀌기 전에 이미 전문직이 되었거나 교장, 교감으로 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라인의 임기 말년이라면, 같은 라인이라 해도 임기 전 낙점을 받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한없이 밀려나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가장 편한 건 조금 늦더라도 근무경력과 연구점수 등으로 승진하는 일반 교장, 교감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교감은 만년교감으로 끝날 수도 있고, 교장은 험지 학교나 외곽 소규모 학교에서만 빙빙 돌다가 퇴임할 수도 있다.


피 터지는 승진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학교당 교장 자리가 달랑 한 자리뿐이라 벌어지는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교장이 되지 못하면 후배 교사나 동료들에게 치 받히고, 학부모나 아이들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그저 아이들만 잘 가르치고 마음 편하게 교직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 일까?

젊은 20~30대는 내 말이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후배가 오늘의 선배가 되고, 승진을 못 하게 되면 그런 선. 후배의 경계도 어느 순간에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이미 장거리 달리기는 출발선을 떠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마디로 검사들이 아래 기수가 승진하면 선배기수가 줄줄이 사표 내는 것과 비교하면 더 빠를까?

그래서 난 가장인 남자들의 고충을 이해할 것 같다.

가장의 그 무게 때문에 오늘도 아래서 치받히고 위에서는 눌러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지내는 것을 가족들은 모른다. 그러면서 귀가하면 자신을 의지하는 가족들에게 그런 티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가족들은 이해할까?

아마도 칼퇴근을 않는다고,

술 마시고 늦게 온다고,

남들 다 하는 승진도 못 한다고,

타박할 수 있다.


어느 직종도 그렇겠지만 특히 부부교사는 상호보완 작용을 하고, 그 어려움을 이해해주니 동료 간의 결혼이 80% 정도 차지한다.

남편이 먼저 승진한 후 아내를 끌어주기도 하고, 아내가 먼저 했다면 자연스레 남편을 끌어준다. 주변에서 그런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교직에서 능력은 남, 녀의 성별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신

야근도 남자하고 똑같이 하고,

술도 같이 대작할 수 있어야 하고,

2차든 3차든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 기회는 공평하게 올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나야 따올 수 있는 것이 승진이고, 피라미드의 정점이 될 수 있으니 쉽게 생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위 내용은 모두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경험치를 말한 것이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tip:


같은 직종이라도 초등과 중등은 다르다. 초등은 초등끼리 중등은 중등끼리 해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9시까지가 출근시간이지만 중등은 아침자습이나 야간 자율학습으로 초등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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