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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
내 스승은 동기 (2)
by
블랙홀
Mar 27. 2022
내 멘토는 쉬운 길이 아닌 험지 길을
갔다.
지역교육청의 장학사도 2년 이상 지나면 교감으로 갈 수 있는데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도교육청의 장학사로 교육감이하 국장, 과장 등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8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방학도 없었고 퇴근시간도 일반행정직처럼 1시간 더 늦었으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출장도 잦았었다.
내가 아는 친구는 퇴근 후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밤 10시까지는 가게를 지켰고, 가사를 독박하는 주부이자 두 딸의 엄마로 누구보다
치열하고 고달픈 삶을 살았는데도 말이다.
알고 보니 장학직에서 연식이 많으면 같은 동기보다 적게는 7~8년, 많게는 10년 정도 교장으로 빨리 승진이 된단다.(교사의 경우)
그래서인지 친구는 우리 동기 중 가장 빨리
40대
말에
교감이 되었고, 교감 1년 반만인 50이 되면서 교장으로 승진했다. 만년 교감으로 퇴직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같이 근무했던 남자 동기 장학사들도 그 친구 이름만 나오면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의지도 강했고 열정도 많았으며 거기에 실력까지 갖췄으니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난 그런 친구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친구의 이름은 우리 동기 중 전설의 인물로
평가되었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만은 00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할 정도였다. 전국
포럼이나
교육부 주관 행사에서 그 친구의 얼굴은 항상 사진 속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실력 있고
유망한 초임 교장으로,
교장 승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호사다마인지 아님 너무 빠른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무리 때문인지 그 친구는 병가 아닌 병휴직에 들어갔다.
교장이 되던 해
,
친구는 우리 집 경사에 왔었을 때 반가움에 잡은 손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난 그때까지도 몰랐다.
하지만 교장이 된 다음 해,
꼭 일 년 만에 만난 친구의 집 행사에서 만났을 때는 지난번보다 더 내 손을 더 꼭 잡았다.
그리곤 가만히 속삭였다. "나 아파서 지금 병 휴가 중이야. 서 있으면 자꾸 넘어지려 해" 난 깜짝 놀라 말이 안 나왔다. 그 친구의 남편이 제약 계통에 근무했기에 아내의 발병을 보고 있지 만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직감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이후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을 때 친구는 손가락에 힘이 없어 카톡을 못하니 전화로 해달라고 했다.
그다음 안부전화에서는 병휴직 일 년 반 만에 명예퇴직을 했단다.
이제 막 교장으로 출발했는데, 아직도 정년까지 12년이나
남았는데 퇴직이라니... 난 망치로 뒷 퉁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친구는 자신을 춤추는 종이인형으로 표현했다.
팔다리에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고,
혼자 걸을 수도 설 수도
없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눕혀줘야 눕고 일으켜줘야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었지만 항상 밝은 목소리였다.
문병을 가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거절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니 불만이 없다고도 했다.
혼자 문자도 못 보낸다고 하여 내가 일방적으로 보내기만 했다. 답장 없는 메시지만 보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휠체어를 밀어줄 테니, 제주도에 추억여행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희망 예정이었지만 친구는 아이처럼 좋아라 했다. 문자도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보낸다고도 했다.
10번을 보내면 3번 정도는 답장이 왔다. 난 그걸로 만족했다.
하지만 그 봄이 오기
전인 유난히 춥던 1월 중순.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 4년을 남의 손을 빌려 생활하다가 그만 그 손을 놓은 것이다.
국문과 출신
첫째 딸은, 평소 죽음을 대비한 친구의 유언을 그대로 옮겨 적은 한 편의 시 같았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평소 신세 졌던 분들께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으니, 마지막 가는 길 오셔서 밥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일체의 부의금은 받지 않겠다고,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자신은 하느님의 품으로 이렇게 가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난 가슴이 먹먹했다.
삶이란 하룻밤의 꿈같구나. 모두 부질없는 짓이로구나.
휴대폰 속의 저장 이름을 보고 걸러서 부고장을 보냈고, 퇴임한 교장이니 일선 학교로도 연락이 가지 않아서 상당수의 동기들은 친구의 죽음조차 모르고 있었다.
참으로 허망했다.
고작 오십 년을 살자고 그리 아등바등 살았을까?
도교육청 8년 근무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모두 털어내고, 이젠 탄탄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남자 동기도 제치고 최초 교장이 되어 좋을 일만 남았는데...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친구가 그리울 때는 대답 없는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가족들이 휴대폰을 그대로 둔 덕분에 가끔씩 예전에 보낸 문지들을 끄집어내어 읽어보곤
,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내 푸념을 들어주던 30년 전 그때처럼...
첫 교장으로 나와 교장실에서 명패를 앞에 두고 찍었던 기념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고, 지금도 프로필 사진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힘들게 알려준 친구의 정보를 끝까지 활용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옛 말씀에 천재적인 사람은 젊은 나이에 데려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나 보다.
내 친구는 그렇게 가버렸다.
내 스승도
그렇게 가버렸다.
친구는 너무 빨리나가 주변에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많았다.
난 확고한 입지가 채 완성되기 전에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려 오히려 더 많은 경쟁자가 생겼고, 경계하는 사람도 많았다.
후배들에게 다시 한번 말 하지만 피라미드식의 교직에서는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주변을 배려하고 겸손해야 한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 페이스를 조절해라.
지금도 현장에서 장거리를 단거리처럼 질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tip:
내 멘토도 내 주변에 있고. 내 적도 내 주변에 있다.
단거리를 질주하다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힘에 부쳐 쓰러질지, 적당한 페이스로 가서 완주를 할 것인지 판단했으면 한다.
원하는 것을 모두 쥐었다 해도 건강을 잃으면 패배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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