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연구대회 도 1등급, 인성 사례는 도 1등급을 받으면서, 전국대회에 진출하게 되어 2등급을 받았다. 실적으로 도교육감과 교육부 장관 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도 표창장과 교육부 표창장까지 함께 따라왔다.
교감은 갈구는 건 확실히 줄어들었지만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안 건넸다.
모든 교사들의 욕심은 그 어떤 대회보다 인정받는 수업연구대회를 최고로쳤다.
교사가 수업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매의 눈으로 체크하는 노련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수업을 평가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교육청 국장과 선임 동기 장학사의 고향 후배이자 같은 고교를 나온, 더구나 교감이 초빙해왔다는 연구부장 b까지 수업연구대회를 같이 나가게 되었다.
b는 이미 연구학교마다 초빙해가려는 vip교사로 지역교육청이 아닌 도교육청의 새끼 장학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예비 유망주였다.
그런 b와 같이 나가면 둘 중 한 명은 떨어져야 하든가 아님 1등급 자리 하나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연구학교의 연구부장은 그 노고가 표창과 함께 그 스펙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연구학교 연구부장이라면 이미 수업연구대회는 일종의 묵시적인 가산점을 따고 들어간다고보면 된다.
교감은 날보고 인성으로 이미 전국대회 입상했으면서 또 나가냐고 물었고, 난 처음이니 욕심부리지 않고 올 해는 참가에 의미를 두겠으며 어찌 연구부장보다 앞설 수 있겠냐고 대답했다.
주변에서는 한 학교에 둘이 통과한 것은 처음이라는 말도 들었다.
이후 본 수업을 준비하면서 선의의 경쟁이라지만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기만 했다.
본 수업 전부터 학교는 손님맞이로 분주했고 심사 당일이 돌아왔다.
원래는 예선 입상자는 3교시 수업이 지정되어 있었다. 심사위원이 출발해서 오는 시간, 잠시 숨 돌리는 시간, 그리고 초등의 특성상 뒤로 가면 집중력이 떨어져 3교시로 정해진 것이다. 두시 간 연속으로 평가를 해야 하니 난 4교시로 밀렸다.
교감은 심사위원들에게 연구학교라서 초빙되어 온 연구부장이라며 b를 치켜세웠다. 주눅이 든 나는 제발 3등급이라도 입상하길 고대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는데 어쩔 내가 1등급으로 b는 2등급으로 나왔다. 솔직히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그런 평가를 받고 보니 과분하기도 하고 모든 세상을 거머쥔 듯 기뻤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수업연구대회 결과의 '수'자도 언급하지 않았고 '축하한다'라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동기 교무는 b앞에서 표정 관리하는 게 좋겠다며 조언도 해 주었다.
b에게는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그 수업대회 이후 b와는 완전 데면데면해졌고, 도교육청에선 난리가 났다.
같은 해 한 사람이 연구대회에서 1등급을 두 번 한 것에 대해 논쟁이 일었고, 덕분에 난 b 라인의 국장 이하 모두에게 남의 새끼로 배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성과 수업은 각기 다른 영역이니 인정해 주되 다음 해부터는 대회에 여러 번 나가지 못하게 규정도 새로 만들어졌다.나 때문에 생긴 규정이었다.
b가 1등급이 될 줄 알고 b의 수업은 비디오 촬영도 했지만, 내 수업엔 비디오 촬영도 하지 않아 나중에 다시 찍는해프닝도 있었다.
이전 학교와 연구학교까지 3년 만에 석사 포함 연구점수 5점을 거의 채웠다.
주부도 엄마도 반납하고 매달렸던 전문직 시험은 첫 해는 헤매다 보기 좋게 떨어졌고, 이듬해는 아쉽다는 생각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2년 차에는 두 명밖에 안 뽑아 관운도 지지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연구점수를 채운 것에 만족해야 했다.
2년 차 9월 1일 자로 새로 온 교장선생님은 시험공부에만 매진하라고 시에서 유일한 분교로 보내줬다.
공문도 없는 분교 장장으로 유치원 2 학급까지 9명의 교사와 행정직까지 10명을 관리만 하면 되는 알짜배기 자리였고, 우리 학급은 4명의 학생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3년까지 근무할 수 있었지만 첫 해 여름, 장마철에 주변이 온통 뱀 천지인 걸보고 혼비백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복도에 기어 돌아다니거나 급식실에 갈 때는 축 늘어진 뱀의 사체가 여기저기서 널브러져 있었다. ㅠㅠㅠ
119에 신고했지만 교실바닥 틈새로 들어간 뱀은 해결할 수없다며, 교실 아래 빈 공간이 뱀굴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줬다. 파충류에는 워낙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트라우마가 있어 다음 해 본교로 가겠다고 보따리를 샀다. 주변인들은 언제 그런 기회가 오겠느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경력 승진이 아닌 전문직 시험으로 나가려는 계획이었으니 내게 벽지 점수는 그리 필요치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본교에 있던 동기 교무는 승진이 목젖에 다가왔지만 마지막 벽지 점수가 부족했기에 고맙다며 나와 자리를 바꿔 분교로 올라가고, 난 본교로 내려갔다.
3년 차에는 작정을 하고 시험에만 집중했다.
당시 교육장의 소개로 ㅇㅇ도에서 논술의 대가라는 모 고교의 교장에게 삼사 개월 동안 레슨을 받았다.
일 주에 한 번씩 주어진 과제로 왕복 3시간을 달려서 배운 덕에 내가 봐도 많은 성장을 했다.
힘들 때마다 자리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 시기엔 도 수업컨설팅 5명 중 교장. 교감들 틈에 교사로 끼어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에 초빙되어가서 수업분석을 해 주었다. 교육연수원 신규교사 대상으로 외래강사로, 사이버 상담교사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지역교육청의 수업연구 예선대회에 심사를 하고 인성 사례 예선에서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도 어느새 새끼 장학사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 시험에선 만족할 만한 시험을 봤다.
어느 문제가 틀렸는지도 알았고, 개인 레슨을 받았던 논술도 연습했던 문제 중의 하나가 나와 꼭지에 맞게 안배 있게 썼다.
합격 발표 공문이 오기 전날,
도교육정에 있던 후배로부터 "누님,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공문이 올 때까지 함구하라는 언질도 받았을 때 곁에서 통화를 함께 들었던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축하를 함께 받았다.
아!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운 오리 새끼로 구박받았던 서러움도,
집안 살림도 친정부모님께 독박시킨 죄송함도,
일찍 출근하고 독서실에서 자정 무렵 퇴근하던 무관심한 엄마와,
주부이길 포기했던 아내로서의 미안함도,
주말을 반납함으로 경사에 참여치 못했던 지인들에게 사람 노릇 못 했던 것도,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동기보다 5년이 부족한 경력에 대한 부담감과 노력만으로는 따라잡지 못했을 벽지 점수에 대한 압박감도,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이제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합격을 알려준 후배와 친목모임 세명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모든 설움을 날려버렸다.
tip
1. 교육부 장관 표창 : 공무원 징계 시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엔 음주운전에 걸렸을 때 등)
2. 상장 : 대회에 직접 참여하여 입상을 했을 때 받는 것을 상장이라고 한다.
3. 표창 : 평소의 실적을 감안하여 추천으로 받는 것을 표창이라고 한다.
엄격하게 따지면 상장은 연구점수와 관련이 있으며, 표창보다는 더 인정 어렵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