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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
교육감 구속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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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May 6. 2022
밤새 설익은 꿈을 꾸다가 출근을 했다.
정식 공문이 내려오길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퇴근할 때까지 공문은 오지 않았다. 발표가 하루 연기되었고 이후 천지가 개벽할 일이 벌어졌다.
명단 속에 아무리 찾아봐도 내 이름은 없었던 것이다.
엊그제 샴페인을 터뜨린 지인들과 미리 귀띔 해준 후배까지 전화 한 통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인지 아님 말문이 막혀서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만나길 꺼려하는 도교육청 인사과에 근무하는
친구 집
앞까지 쫓아 가 겨우 만났다.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묻고 또 물었다. 도대체 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새벽까지 진상을 떨며 알아낸 것은 ㅠ
시험장에 들어가 펜을 드는 순간 당락은 이미 결정된다고 했다.
확실한 1. 2순위는 건드리지 않지만 나처럼 뒷순위의 사람은 바뀌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그리고 나와 바꿔치기된 이는 알고 지내던 후배 강ㅇㅇ라는 것도 알았다.
하긴 시험 결과도 오픈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니 얼마든지 바뀌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뿌려진 공문은 다시 수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며칠을 아니 한동안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작년, 재작년 떨어졌을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라인의 뿌리가 이렇게 깊은 줄은 몰랐다.
실제 실력 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장학사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실체를 알고 나니 20년 이상 지켜온 교직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 불만이 뱀 대가리처럼 튀어 올라왔다.
내게서 수업평가를 받던 후배들이 전문직(장학사)으로 줄줄이 나가는 걸 보면서 난 불만으로 똘똘 뭉친 교육의 이단아가 되고 있었다.
예전 시험에 번번이 합격하고도 2차 현장 인성에서 번번이 떨어진.
툭하면 교장에게 대들던 교감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 학교에서 더 근무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밤을 지새우며 선배, 동료들과 척을 지면서까지 노력한 지난날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연구점수와 벽지 점수를 위해 들어갔던 학교에서 3년 만에 이동을 했다.
출퇴근도 빠르고 근무인원이 많아 업무도 편한 집 앞 학교로.
2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운동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고, 아파트 주방 창문으로 교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10미터
거리에 있는 코 앞에 있는 학교였다.
이곳을 두고 하루 출퇴근으로 두 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았던 내가 바보스럽기만 했다.
칼퇴근을 하면 집에 가서 꼼짝하지 않았다.
모든 걸 잊고 그동안 소홀했던 엄마이자 주부, 딸의 역할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
그렇게 내려놓으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나?
미리 샴페인을 터뜨렸던 지인들 때문인지, 전화를 받을 때 결에 있던 동학년 샘들 덕분인지 내 사건은 사방팔방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도교육청의 핵심라인에 있는 또 다른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내게 도에서 떠들지 말고 입조심하라는 언질을 주라고 해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 일 이후 난 납작 엎드려 조용히 있었지만 도교육청에까지 떠도는 소문이 들어갔고, 그로 인해 책임자였던 누군가의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 해 가을 입조심하라던 친구가 또 연락이 해 왔다.
이번에 도에서 장학직 응시서류를 제출하라고 한단다.
사람을 떠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 꿍꿍이인가 ?
그렇게 열심히 하며 간절히 원할 때는 냉정히 팽개치더니, 이제와서는 먼저 손을 내밀어 원서만 제출하면 알아서 해 준다니... 오히려 심한 배신감까지 들었다.
그래서 난 거절했다.
아니,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노력이 회생하지 못할 만큼 너무 아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불과 몇 달 전까진 그토록 갈망했던 일이지만 이미 마음을 접었고, 그렇게 라인을 타고 올라간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들끼리 곪은 상처를 서로 감추고 목에 힘을 준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뒤에서 수군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도교육감이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다.
1인당 삼천만 원을 받고 장학직을 팔아넘겼다고 연일 tv에서 방송해댔다.
그동안 곪았던 것이 터진 것이다.
그때 난 이렇게 말했다.
" 병신들. 나한테 제의했으면 난 오천만 원도 줄 수 있었는데 겨우 삼천만 원이야? " 하고.
1. 뇌물을 받고 승진을 시켜준 교육감이 구속되면서 내 친구 교장들과 장학사 몇 명은 의원면직 내지는 해임되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머리와 꼬리들만 피를 봤지 중간의 몸통들은 그대로 빠져 남아있다는 것을.
2. 난 그들의 희생양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지리도 관운이 없는 평교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같은 교사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눈치 없이 굴지도, 팽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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