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음에도 지금의 교직, 아니 교사들의 삶은 처절하고 가슴 아프기만 하다.
어디를 가든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교사라고 하면 무슨 꼬투리를 잡힐 까 얼버무리고 만다는 후배들의 얘기를 들으면 짠 하기만 하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교육은 백년지계라 했건만 지금의 흔들리는 교직을 바로 잡으려면 백 년이 아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싶다.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며 ~~ 라테를 읇조리던 교총만 있었던 시절엔 적어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교직은 며느리 선호도 1위, 안정적 가정을 원하는 교사커플이 선호도 1위였던 때도 있었다.
5060 시대의 교사들의 바람은 큰돈은 못 벌어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고, 자식들도 같은 직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그 나이 대의 교사들은 대학을 다닐 때는 보장된 직업으로 선호를 했고, 정년퇴직을 해도 부부합산 연금이 700만 정도는 넘어가니 적어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는 않는다는 희망에 살았다.
그래서 자식들도 본인과 같이 안정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같은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내 주변에도 자식이 여럿이면 그중 한 명은 부모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Y, Z, MZ세대의 교사들은 모르겠지만, 정년을 했거나 정년을 앞두고 있는 XY세대 교사들이 직에 대한 위기를 느낀 건 000 교육부 장관이자 총리를 지닌 그분 때부터였다.
교육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분은 교육 혁신을 하고자 노력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로는 혁신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의 개혁이 되고 말았다.
처음 의도한 바와는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았겠지만 장관이 정치적으로 교육을 논하자니 현장과의 괴리감으로 교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내 선배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그렇게 정년을 채우지 않고 그 꼴을 안 보겠다며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퇴직한 분들이 상당수 있었다.
현장 교사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는 하향식 전달로의 혁신 아닌 개혁으로 당시 교사들은 마트에 가도 000 고추장, 된장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 곤 했었다.
그때 전교조라는 새로운 이름의 교사들의 집단도 생겼고, 진보주의 교육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교조가 가히 교육에 대한 혁신을 일으켜 제 자리를 잡았지만, 초창기에는 교육감의 대부분의 교총이라서 전교조 교사들은 상급자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혁신보다는 개혁을 부르짖던 교육부장관과 혁신을 충분히 이해 못 하는 초창기 몇 명의 전교조 교사들은 정형화된 틀을 깨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학부모들의 괴리감이 현재의 괴물 교육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는 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어 서로 장점을 모아 혁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반대로 혁신 아닌 급개혁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우려하는 교사나 학부모들도 많아 교육계는 양분화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창기 내 주변의 전교조 후배교사들 개중에는 교실 내 교육보다는 체험중심으로 툭하면 산으로 들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장의 재가가 있어야 야외학습이 이루어지지만, 학교 밖에서의 불상사를 우려해 결재를 해주지 않으면 일일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일요일 체험학습을 해 주는 교사들도 생겨났다.
학부모 중에는 저런 열의를 가진 선생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환호하는 분들도 있었으니......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수업 시간도 아니고, 상급자에게 결재를 받지도 않고 오로지 담임의 의사에서 이루어지는 야외체험학습은 학교에서 학생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학부모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일요일도 반납하고 아이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하는 교사가 고마워 도시락도 싸고, 체험에 드는 비용도 따로 내고, 차량도 동원하고...... 하지만 이런 건 모두 불법이다. 불법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 것까지는 당시의 교사나 학부모 모두 몰랐을 것이다.
이런 수업을 주도하는 몇 명 교사들에 의해 일어난 체험위주의 수업은, 시간이 흐르니 학습의 질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환호를 지르던 학부모들이 고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받침이 틀리고 수학 부등식은커녕 곱셈, 나눗셈 기초조차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며 지각 있는 부모들은 아차 싶었다고 했다.
처음의 혁신교육, 혁신학교는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교사와의 거리감이 좁혀지니 협조해 주던 부모들이 차츰 교사들의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경찰서와 처가 집은 멀수록 좋다는 것처럼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중도를 지켜야 했지만, 열의만 있었던 교사들은 학부모와 그렇게 허물없이 트고 지내는 것이 혁신교육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차츰 학부모가 교사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틈을 내주고 만 것이다.
집에서는 멍이 들도록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을 후려 패면서도 가정교육이란 이름으로 넘어가면서, 학교에서의 훈육은 아동학대니 학생인권이니 하며 교사들의 행동도 그 반경이 줄어들고 입지도 흔들렸다.
그뿐인가? 때로는 해외유학파니 대학교수니 하면서 초, 중등 교사들의 수업에 개입을 하면서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기주의가 나 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대부분 교사보다 교육을 해 본 경험이 많고, 교사보다 학벌이 높거나, 위 아이가 있어 학보모 경험을 한 부모들이 그런 간섭이 많아졌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결정적으로 그 틈새를 휘잡고 들어온 것은 학부모에 의한, 학생에 의한 교사를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교직은 자멸의 길을 걷을 수밖에 없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시행령을 만든 것은 누구? 바로 교육부의 방침이다.
사실 교직에 근무하다가 교육부로 가는 케이스는 참으로 드물다.
지금도 주로 교육행정직 출신이 교육부에 더 많이 포진하고 있고, 개 중에는 교수들 중 임명직으로 가게 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솔직히 교육은 알지 모르나 교육현장, 교실에서 일어나는 부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거나 아니면 교육 전문직으로 마치는 경우가 90% 가까이 된다고 보면 된다.
교사 출신(교장이나 전문직 포함)이 교육부에 들어가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극히 드물었다.
따라서 교육 현장,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겪어보지 못한 교육 관련 국회의원들이 교육법을 만들고, 정치인 출신의 장관과 교육행정직 출신의 차관, 국장들이 그에 맞춰 시행령을 만드는 한은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교육 부작용은 더 일어날 거고 교사들의 자리는 위태롭기만 한 것이다.
예전부터 교사집단만큼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집단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교사들이 한 목소리로 뭉쳐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이유는 교사들은 독립권이 있고, 교사마다 지향하는 학습목표에 따른 수업방법이 달라도 목표만 도달하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학습권을 가진 게 한 가지 이유고,
두 번 째는 교장 할아버지라 할지라 해도 교실에 출입을 하려면 해당교사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몇 평 안 되는 교실은 교사들의 성역과 같았다.
출근과 함께 종일 교실에 있다가 퇴근을 하니 학급수가 많은 학교라면 동학년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정보를 주는 제도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교육현장의 특수성 때문에 교사들 간의 정보교류도 해당교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그에 대한 경질을 법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교직에서 오래 뼈대가 굵은 교사들은 현재와 같은 교육현실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그러다 보니 그저 아이들 가르치는 것으로 그 직을 다 하는 교사도 있었지만, 때론 이런저런 꼴 보지 않으려 명예퇴직하는 교사들도 급격히 늘어난 것도 추세였다.
따라서 지난 긴 세월을 교육현장에 있었고, 교육을 바라봐 온 나는 지금의 교육현실은 한 때 교총이니 전교조니 서로 기 겨루기를 하는 동안 그 틈새를 뒤집고 들어온 교육행정직이 포진하고 있는 교육부의 방침이나 시행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이니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하지만 교육행정직 출신이 교육부로 많이 진출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휘둘리고,
학생에게 얻어맞는 걸 알면서도
그 들을 보호해 줘야 할 상급자들은 정년까지 말썽이 생기면 안 되니 그저 덮으려고 쉬쉬하고,
교육지원청 역시 그런 문제가 빌미가 되어 외부에 확산될 까봐 교사들에게만 희생하기를 강요하기 분위기 때문인 것도 모른다.
그 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
" 오죽하면 학부모에게 휘둘려?"
" 오죽하면 아이가 대들까"
"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저 학급은 그 모양이야"하며 오히려 상처기 있는 교사들에게 소금을 뿌려 그 쓰라림을 더 가중시키니, 교사들은 함부로 누구에게 의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을 것이다.
명예퇴직을 염두에 두고 할 말 하면서 지내던 내게도 그런 상황이 종 종 찾아왔었다.
특히 승진을 앞두고 있는 교감,
사고 없이 무탈하게 정년을 해야 하는 교장,
교육현장을 지원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직이 아닌 중심 도시의 교육장으로 나가고, 어떻게 하는 교육감의 지근거리에 있는 능력 있는 교육장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의 합작품이라고도 난 본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과물 교육현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에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니 교사 집단, 학부모, 교육지원청, 교육부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의 방향을 제대로 짚지 못한 과거의 주무부처 장관의 방향등에 대한 것도 한몫을 했으니,
이젠 우리 모두 원래의 교육계로 되돌려 놓을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하루 종일 몸 담고 있던 교실에서,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 싶어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