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도 한 참 꼬였네

by 블랙홀

"00 엄마! 빨리 이사할 준비 해"

"지금? 이사 날은 보름이나 남았는데? "


외출했던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오더니 다짜고짜 이사 짐을 준비하라고 성화다. 그것도 다 ~저녁때, 조금 있으면 겨울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텐데.


본가가 있는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을 받아 빈 집에 틈틈이 가구를 들여놓긴 했지만, 손 없는 날 사주에 좋다는 날을 받아 아직 보름 정도 남았다.

하지만 성격 급한 남편을 말릴 수 없었다.

트럭을 갖고 있는 동네 친구 서너 명이 오늘 시간이 나서 도와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삿 짐 센터도 이미 예약해 뒀고, 그동안 이사 날에 맞춰 조금씩 정리는 했지만 정말 뜬금없었다.


잠시 후 친구들이 차를 끌고 와서 주섬주섬 짐을 싣기 시작했다. 여럿이 달려드니 버려야 할 짐도 차에 실렸고, 포장하지 않은 짐도 그대로 차에 실었다.

그렇게 야반 도주하 듯 이사를 해서, 짐을 다 풀고 나니 밤 11시가 가까워졌다.

전문가가 아니라 장롱은 간격을 맞추는데 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침대모서리는 쪽이 나가기도 했다.


결혼하고 13년 동안 살았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을 때, 주변인들의 말에 읍내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가서 좋은 날까지 받아왔다.

달력에 빨강 동그라미를 치고 이사 날짜에 맞춰 버릴 건 버리고, 빈 집에 보관할 건 보관하고, 가져갈 건 가져가고 나름 준비를 해왔던 게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방이니 거실에 한가득 짐을 풀어놓고 남편은 친구들과 늦은 저녁을 먹겠다고 홀랑 나가버렸다. 기가 막혀서......

새벽 세 시가 되도록 짐을 정리하며 남편을 기다리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리가 안 돼 이부자리도 펼 자리도 없었고, 거실이나 방바닥에 내려만 놓고 철수해서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아 인근에 있는 시댁으로 내려갔다.

단 잠을 깨워서 인지 시어머니는 '끼니때가 되었음 내려와서 지 자식들 밥은 챙겨 먹여야 지' 하며 한 술 더 떠 짜증을 냈다. 하아! 어머니~왜 그러세요.


평소 퉁명스럽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살갑지 도 않은 시어머니였다.

남편과 대치할 때는 '네 맘 안다'하면서도 어느새 아들 편을 드시던 분이다.

그게 서운하다고 하면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데 그럼 누구 역정을 드 누......

너도 새끼 키워봐라 내 맘 하고 똑같을 거다.' 하며 싱겁게 마무리하시곤 했는데 사실 그 말씀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단지 화법이 직설적이어서 그렇지.


다음 날, 어제 하다 만 짐 정리를 하러 같이 가자고 하니 남편 왈, 가구는 제 자리를 잡아 줬으니 나머진 마누라가 하는 거란다. 그리고 정리가 다 끝나도록 시댁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

남편은 보수적이고 고집 센 충청도 남자였다.

하루에도 열두 번은 변덕이 죽 끓듯 해서 결혼 생활 10년을 넘겼어도 감을 잡지 못해 항상 노심초사했다.


거기에 화술이 기가 막히게 좋아, 따지다 보면 묘하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만 해서, 평소 말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했던 것은 이 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술 더 떠 앵무새처럼 하는 말

" 내가 초등학생일 때 넌 기저귀 차고 기어 다녔어"

"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일 때 넌 어린이 집에 다녔어"

" 어디서 맞먹으려고 해" 라 고 하는 말에 세뇌 당해 입을 다물곤 했다.

진짜 전투가 시작되려면

" 가방 끈 길다고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냐?"라고 말하면 남편의 정곡을 찌른 것 같아 지레 아무 말도 못 했다.


같은 직장에서 동창들끼리 결혼한 동료를 보면, 한 밤중에 서로 기저귀를 갈라고 미루다가 똥 기저귀를 공중에 날리며 싸웠다던 지, 우유병이 공중에 날아다녔다든지 하는 얘기를 들으면 그 들이 부러웠고, 난 다른 세상에 사는 듯했다.


남들은 손 없는 날, 좋다는 날 찾아 이사를 하건만 날을 잡아 놨어 도, 이삿짐센터를 계약했어도, 남편 덕에 생고생을 해가며 뭐 하는 짓인지…… 뭔가 꼬여도 한참 꼬인 듯했다.


신기한 것은 그 난리를 치면서도 제 자리에 들어갈 건 들어갔고, 새로 장만할 것은 장만해서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편하겠다고 했지만 적응하기까지는 한 참이 걸렸다.

한 동안, 환한 주차장 가로등불에 잠을 못 이워 커튼을 치면 침대 모서리에 부딪쳐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었고, 외풍이 없는 아파트의 정체된 공기에 화닥가려 잠을 못 자 온몸이 찌뿌둥하고 자고 일어나면 짜증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