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해보니 현관 앞에 낯익은 나무절구통이 놓여있었다.
시댁 뒤뜰에 있던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쓰셨다는 골동품 같은 절구통에, 비록 조화이 긴 했지만 빨간 장미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편은 술을 안 마셔서 인지 때론 나보다 더 섬세했고, 더 여성스러울 때도 있었다.
우리 라인엔 변호사나 병원의사 등 사 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우리처럼 눈에 띄게 현관 밖에 절구통 같은 걸 내놓은 집이 없어, 한번 본 사람은 기억을 하고 '절구통이 있는 집'으 로 불렸다.
집 안에 대형 화분을 놓고 소소한 식물을 키우는 건 봤어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현관 바로 앞에 절구통이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아파트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배기에 있었고 단지 바로 앞에 남. 녀 공학 중학교가 있었고, 10분 거리에 초등학교까지 있어 30~40대는 학군이 좋다고 모여들었다.
최 근 몇 년간은 신축아파트가 없었고, 그동안은 30여 평이 최대 평수였지만 50평형대까지 중대형 평수가 모여 있다 보니 공무원이나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뤘고, 내 직장 동료만 해도 십여 명이 같은 입주민이 되어 만났다.
집 정리가 끝나자 시어머니는 먼저 나서서 집들이를 하자고 부추겼다. 남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것은, 시어머니나 남편이 꼭 닮았다.
집들이 날이 잡히고, 대부분의 음식은 시어머니가 장만해 와서 상에 내놓기만 하면 되었다. 점심땐 시댁식구들과 시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저녁엔 남편의 지인들이 와서 종일 잔칫집 같았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떠들썩하게 놀았고,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주무셨다.
다음날 시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려고 지하 주창에 내려간 남편이 차가 없어졌다고 전화가 왔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헷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혹시 다른 곳에 주차했는지 알아보라고 했지만 온 아파트를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의 평소 습관은 언제 쓸지 모르니 현금은 차 안에 넣어두고 다녔는데 그것마저 몽땅 사라진 것이다.
경찰서에 도난신고를 하고, 한 달을 기다려도 찾지 못해 남편은 새로 장만해야 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나서야 외곽 낯선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 검은색이 회색으로 변해버린 차를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 주저앉은 상태였고, 차 안에 쓸만한 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깡통 차가 되어있었다. 결국 그 차는 중고로 팔아버렸다.
아파트주차장에 있던 차가 도난당한 건 지역 경찰서 창사이래 처음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덕분에 우리 집은 S시가 생기고 주차장의 차가 사라진 첫 번 째 집이라고 했다. 내 적으로는 이사 같지 않은 이사를 도망치듯 야반도주한 것이 첫 번째 사고였다면, 집들이 다음날 차를 도난당한 깃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이사를 간지 몇 달 안 되어 난 셋째를 임신했다.
사주팔자는 진짜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나 보다.
이사 날을 보기 위해 철학관에 갔을 때 다음 해 봄 임신을 하겠다며 아들이라고도 했고, 난산으로 몸에 칼을 대겠다고도 했는데 우선 임신을 한 것은 맞혔으니 말이다.
인위적인 피임은 하지 않았음에도 첫째와 둘째는 만 네 살 차이고, 셋째를 출산하면 둘 째와는 만 여섯 살 차이가 된다. 당시엔 30대 중반으로 노산 인 셈이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서 중학교에 입학하면 자신은 환갑이라며 넌지시 출산을 반대했다.
친정 부모님께서 육아를 도와주셨지만, 직장에 다니며 두 아이를 케어하기도 힘들었고 막 시작한 대학원공부도 버겁기만 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는 캠페인이 한창 인 때라 대부분 주변 동기나 지인들은 애를 둘 낳으면 끝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4년 전 임신을 했지만 유산을 시켰고, 그 후 산후우울증으로 몇 달 동안 힘들어했던 기억이 또 올라 걱정이 되기도 했다. 출산을 해도 유산을 해도 산후우울증이 온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산후우울증은 무서웠다.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며칠은 뜬 밤으로 새워도 졸리지 않았다.
절실히 임신을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흐르다 보니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아갔다.
첫째와 둘째처럼 20대 출산이 아닌 30대 중반의 임신은 처음부터 부작용이 나타났다.
입 덧은 심하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6개월이 지나니 25킬로 이상 살이 쪄서 걷기도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얼굴에 생기기 시작한 기미는 진한 화장으로도 감춰지지 않을 만큼 넓고 진하게 퍼졌 다.
늘어진 배를 감싸 안고 다니니 사람들은 쌍둥이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산부인과에선 임신당뇨증세가 있다며 운동을 하라고 할 뿐 별다른 조치를 해 주지 않았다.
숨 쉬기가 힘들어, 캥거루처럼 옆으로 배를 늘어뜨리고 자야 했다.
출산 중 어떤 위험이 생길지, 괜히 출산을 고집하지는 않았는지, 무사히 출산해서 이 애들을 다시 데리고 잘 수 있을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이제 와서 뱃속의 아이를 꺼낼 수도 없앨 수도 없어 눈물만 나왔다.
7개월이 지나자 아기가 명치끝으로 올라와 숨을 쉬기도 불편했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더 이상의 근무는 어려웠다.
이른 산후 휴가에 들어갔고, 휴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손님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