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남편은 오전 11시경 외출을 하고 두 아이는 학교로, 학원으로 가서 출산 휴가를 받은 나 혼자 집에 있을 때였다.
건장한 두 남자가 배달 왔다며 어깨에 둘러맨 사과박스를 모니터에 보여줬다.
남편 이름을 대며 주소를 확인하길래 평소 자주 배달로 보내준 적이 있어 큰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한 명은 현관 앞에 서 있고, 한 명은 배달 종이에 서명을 해 달라고 하며 친절하게도 만삭의 임산부이니 거실 안까지 갖다 주겠다고 했다.
거실바닥에 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시커먼 물체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남자가 검정가죽장갑을 낀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물체는 사정없이 발사되었고, 난 반사적으로 얼굴을 감쌌다.
충을 쏜 남자가 현관으로 가는 걸 손가락 틈으로 보고 경비실 인터폰을 눌렀다.
그리고 안방으로 미끄럼을 타듯 도망가자 현관에 서 있던 남자가 "저거 안 쓰러졌네" "한 방 더 쏴"하는 소리가 등뒤로 들렸다.
뭔가 단단히 잘 못 된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안방 문을 잠그고도 겁이 나서 다시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당황하니 112도 생각이 안 나 급한 대로 119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119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오니 긴장이 풀렸고, 그제야 얼굴이 고춧가루를 비벼 댄 것처럼 아파 옴을 느꼈다. 급해서 불도 못 켠 채 들어가 더듬적거리며 세수를 했지만 더 얼 얼 해 지고 아파서 눈까지 뜰 수가 없었다.
119 대원이 큰 소리로 부르길래 그제야 밖으로 나와보니 남자들은 도망가서 보이지 않았고, 사과박스는 열려 있었다.
안에는 먹음직하고 튼실한 사과도 있었지만 맨 위에 칼과 녹색청테이프가 들어있었다.
소식을 듣고 온 남편과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는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결혼 잘 못해서 제 명에 못살겠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통곡 소리는 경찰서 담장 너머까지 들렸다.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아픈 건은 가스총 때문이란다.
난 가스총을 맞은 것이다.
대학 때 한창 데모로 임시계엄령까지 선포되었지만 우린 특수 대학이라 일체의 데모를 허용하지도, 할 수도 없어 마치 다른 나라인 것처럼 관심 없이 지냈는데 성인이 되어 가스총을 맞았다는 게 너무 황당했다.
남자들은 분명 000 씨 댁이냐 하며 남편 이름을 댔고,
임신한 아내에게 배달해 달라고 해서 왔다고 했으니,
내가 만삭의 임신부임을 알고 있었고,
오전 11시면 대부분 맞벌이로 아파트에 빈집이 많다는 것도,
남편이 외출한 직 후 왔으니 집에 혼자 있다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벌인 일이니 치밀하게 사전계획을 세웠음에 틀림없었다.
그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구에게 원한을 산 일도, 싸운 일도 없는데 하필이면 나야?
내가 없어졌을 때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리로 풀어내기는 어려웠다.
그 날밤 충격으로 하혈을 해서 안정하느라 며칠을 꼼짝 못 하고 누워 만 있으니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갔고, 의사는 임신 당뇨로 커가는 아기도 위험하고 산모도 위험하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날 좋은 날과 시를 받아 놨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응급실로 들어가 수술을 해야 했다.
막내는 그렇게 팔삭둥이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