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팔삭둥이로 태어났지만 4킬로가 훌쩍 넘게 태어나, 신생아실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지역대학병원 설립이래 가장 큰 아이가 태어났다며 간호사들은 유치원생이라 불렀다.
출산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오후 8시, 응급실을 통해 수술실로 들어간 후 담배를 피운다고 나간 남편은 출산을 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보호자를 찾는 안내방송을 해도 오지 않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서야 헐레벌떡 왔다니. 그 사이 인근 넷째 시 동생 집에 다녀왔다 나 뭐라나......
임신 당뇨가 심해 지혈이 안되면, 자궁을 들어내도 된다는 동의서를 함께 받았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수술시간은 지혈이 안되어 두 시간이나 걸렸단다.
출혈이 심 해 여러 팩의 수혈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출산 6시간이 지난 새벽 2시가 지나서야 깨어났고, 남편은 홀아비가 되는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히 생각해 준다면 1인 실 병실을 잡아줬지만 툭하면 담배를 피운다, 바람을 쐰다며 혼자 남겨두고 드나드는 남편을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출산 다음 날은 동네친구들이 축하하러 왔다며, 잠시 갔다 온다더니 서너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
그렇게 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태어난 아기는 출산까지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울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순 둥이었다.
가장 힘들고 까탈스러웠던 아이는 첫 째였고 그다음 둘째, 막내로 갈수록 아이 키우기는 수월했다.
출산은 했지만 30킬로 가까이 불어난 몸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얼굴에 핀 기미도 그대로였다.
남편은 자기는 도와주지 못한다며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줬고, 불어난 몸은 백일 안에 빼야 된다며 건식 사우나를 들여줬다.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 사우나에 들어가 솟구치는 땀을 닦아내다 보면, 1~2킬로는 금방 빠졌다가 먹으면 다시 반절은 찌고 빼고를 반복하다 보니, 출근할 때는 예전까지는 아니라도 체중감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미에 좋다는 화장품을 퍼 발라도 양 볼의 기미도 없어지지 않았다. 화장은 더욱 진해져 스모 키, 진한 화장으로 감췄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드러났다. 거울을 보기가 두려울 정도라서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장에라도 갈라 치면 속 모르는 어른들은 내 얼굴을 보고 뭐가 그렇게 힘드냐, 벗어 놓은 남편 양말을 얼굴에 비벼봐라, 지푸라기를 삶은 물로 세수를 해보라는 등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러워했다. 알려준 대로 해봤지만 말 짱 도루묵이었다.
남들은 친정이나 시댁에서 몸조리를 해준다지만 세 아이 모두 남편이 출산 조리를 해 줬다.
가물치와 장어를 푹 고아 삼베에 짜서 소금과 함께 줬지만 특유의 흙냄새로 목에 넘어가지 않았고, 방목했다는 흑 염소며 뱀술(투명유리 안에 뱀이 그대로 들어있는)을 구해왔지만, 뱀이 투명유리로 다 보여 소름이 끼쳤다. 출산 후 뱀술을 먹어야 된다는 얘기는 난생처음 들어봤다.
내게도 유별난 점이 있었는데 돌아가더라도 가봤던 길을 선택했고,
음식도 먹어 본 것만 고수하고,
옷 가게도 가던 집,
식당도 가 본집 만을 고수했으니 낯 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 버릇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해산물은 끝에 ‘치’가 들어가는 것만 먹었고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야채는 무조건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무친 겉절이를 좋아해서 지금도 묵은 지나 신 김치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남편은 처음엔 열심히 사 나르더니 호응도가 낮으니 금방 시들해졌다.
그렇다.
남편은 단순하고 즉흥적이며 잔 정도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었고 매우 직설적이었다.
그건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잠재적인 습관이나 성격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