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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인생

by 블랙홀

어처구니스럽게도 정년을 12년이나 남겨두고 사표를 내던 졌을 땐 뒤도 안 돌아볼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스러울 때가 많았다.


내가 가장 많이 웃고 편했던 때가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라면... 그때 알았더라면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말릴 때 모른 척하고 그냥 눌러있을 걸.


일단은 성인을 상대한다는 게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면 이 것도 아이들 세계에서 30여 년을 지내온 고착화된 직업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지루할 만큼 자세하게 설명해야 되고, 1+1은 반드시 2가 되어야 하고, 목소리 톤이 유달리 고저가 많고...


그래서인지 가족들은 서론만 꺼냈는데도 ' 그만. 결론만 얘기해' 하고 외쳐대니 그도 섭섭하기만 하다.


그나마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을 해서인지 팔도 어디에 지원서를 내도 기간제로 근무할 수 있어 그 지역 문화탐방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자유로운 영혼이 된 적도 있었다.


가장 짧았던 건 방학을 끼고 두 달, 실제로는 3주 정도 근무했고 가장 길었던 때는 정원 외로 전담을 10개월 동안 했었다.

대부분은 3개월에서 6개월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슬슬 꾀가 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같은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면서 역마살이 발동하곤 했다.

내 스펙정도라면 어느 지역이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년 가까이 되니 그런 기회는 한 살이라도 어린(?) 친구들에게 돌아가고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번번이 미끄러지며 진짜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뿌잉~~~


나이가 든다는 건 늘어가는 주름살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한정적이라는데 자존감이 낮아지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교사에 대한 권위 아닌 인권이 무너지고,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들이 교사(가르치는 사람) 아닌 선생(세상을 먼저 산 사람) 정도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 에효. 사표를 내고 저 꼬락서니를 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최근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건으로 확실히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건 사실인가 보다.

교대 지원율이 떨어지고 병가나 휴직을 쓰면서 기간제를 구하는 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것을 보면.


뭐 하냐고 물을 때 자랑스럽게 '교사예요' 하던 그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까? 싶다.


집에선 "왜 그렇게 말이 많아?" "한번 만 말해" " 어디 가서 말하지 않으면 카리스마 있는데. 말하는 순간 푼수처럼 보여"

하아!!! 이런 가지들 같으니라고 ㅠ


하지만 실제 밖에 나가면 "혹시 공무원이셨어요? 교사?"라고 물으면 가슴이 뜨끔해졌다.


하릴없이 반려견과 종일 대화를 하다가 접한 게 브런치였고 출간도 했지만,

작가란 길이 백수에겐 배고픈 영혼이 되어야 했다.


러다 난 4월, 정년이 넘었지만 한시적 채용이란 명분으로 시간강사 자리를 구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방과 후도 아니고 돌봄도 아닌 '기초학습 지도강사'란 이름으로.


그렇게 만난 여섯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색깔과 특성을 지닌 럭비공 같은 친구들이었다.

정규수업도 지겨운데 따로 수학과 국어를 해야 하니 짜증이 날만도 하다.

백번 이해는 하지만 때론 나도 벽에 갇힐 때가 많았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병원에 가는 날과 현장체험의 날을 제외한 주 5일을 빠지지 않고 출근했다.

컨디션이 안 좋고, 졸려 힘들 때는 두 개의 커피믹스에 얼음 띄워 완샷하고 집을 나섰다.

강사라 책임감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리고 조금은 아픈 손가락이 되었던 다섯 그룹 여섯 명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위 표지그림은 5학년 분노조절 진단을 받은 아이가 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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