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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Jul 26. 2024

투덜투덜 인생

어처구니스럽게도 정년을 12년이나 남겨두고 사표를 내던 졌을 땐 뒤도 안 돌아볼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가장 많이 웃고 편했던 때가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라면... 그때 알았더라면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말릴 때 모른 척하고 그냥 눌러있을 걸.


일단은 성인을 상대한다는 게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면 이 것도 아이들 세계에서 30여 년을 지내온 고착화된 직업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지루할 만큼 자세하게 설명해야 되고, 1+1은 반드시 2가 되어야 하고, 목소리 톤이 유달리 고저가 많고...


그래서인지 가족들은 서론꺼냈는데도 ' 그만. 결론만 얘기해' 하고 외쳐대니 그도 섭섭하기만 하다.


그나마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을 해서인지 도 어디에 지원서를 내도 기간제로 근무할 수 있어 그 지역 문화탐방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자유로운 영혼이 된 적도 있었다.


가장 짧았던 건 방학을 끼고 두 달, 실제로는 3주 정도 근무했고 가장 길었던 때는 정원 외로 전담을 10개월 동안 했었다.

대부분은 3개월에서 6개월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슬슬 꾀가 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같은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면서 역마살이 발동하곤 했다.

 

내 스펙정도라면 어느 지역이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년 가까이 되니 그런 기회는 한 살이라도 어린(?) 친구들에게 돌아가고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번번이 미끄러지며 진짜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뿌잉~~~


나이가 든다는 건 늘어가는 주름살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한정적이라는데 자존감이 낮아지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교사에 대한 권위 아닌 인권이 무너지고,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들이 교사(가르치는 사람) 아닌 선생(세상을 먼저 산 사람) 정도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 에효. 사표를 내고 저 꼬락서니를 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구나 최근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건으로 확실히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 건 사실인가 보다.

교대 지원율이 떨어지고 병가나 휴직을 쓰면서 기간제를 구하는 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것을 보면.


뭐 하냐고 물을 때 자랑스럽게 '교사예요' 하던 그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까? 싶다.


집에선 "왜 그렇게 말이 많아?" "한번 만 말해" " 디 가서 말하지 않으면 카리스마 있는데. 말하는 순간 푼수처럼 보여"

하아!!!  이런 가지들 같으니라고 ㅠ


하지만 실제 밖에 나가면 "혹시 공무원이셨어요?  교사?"라고 물으면 가슴이 뜨끔해졌다.


하릴없이 반려견과 종일 대화를 하다가 접한 게 브런치였고 출간도 했지만,

작가란 길이 백수에겐 배고픈 영혼이 되어야 했다.


러다 난 4월, 정년이 넘었지만 한시적 채용이란 명분으로 시간강사 자리를 구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방과 후도 아니고 돌봄도 아닌 '기초학습 지도강사'란 이름으로.


렇게  만난 섯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깔과 특성을 지닌 럭비공 같은 친구들이었다.

정규수업도 지겨운데 따로 수학과 국어를 해야 하니 짜증이 날만도 하다.

백번 이해는 하지만 때론 나도 벽에 갇힐 때가 많았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병원에 가는 날과 현장체험의 날을 제외한 주 5일을 빠지지 않고 출근했다.

컨디션이 안 좋고, 졸려 힘들 때는 두 개의 커피믹스에  얼음 띄워 완샷하고 집을 나섰다.

강사라 책임감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리고 조금은 아픈 손가락이 되었던 다섯 그룹 여섯 명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위  표지그림은 5학년 분노조절 진단을 받은 아이가 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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