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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1)

by 블랙홀

울 넷째 고모는 유별난 왈가닥에 눈물 많은 야리야리한 여자다. 목소리가 커서 이웃들은 우리 집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는 고모때문에 알고 있었다.


좋으면 지붕이 들썩거리게 웃고, 분이 나면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퍼 질러대는 기억 속의 고모다.

할머니도 함부로 못 하는 증조할머니에게 "저 노인네 언제 죽냐"며 소리를 지르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월급을 톡 털어 빵이며 화장품을 한 보따리 사다 풀어주곤 일주일도 못 가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돈 달라고 생떼를 쓰곤 했다.


어른들은 흰색말 해에 태어난 말띠라서 고삐없이 날 뛰지만 저 성질은 아마 평생 못 고칠 거라며 혀를 끌끌 짰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모는 도통 걱정이 없어 보였다. 만족하면 기분이 좋고 불만족스러우면 싫은 티를 상대가 누구든 솔직하게 표현하는 어쩌면 뒤끝 없어 좋은 고모였다.


언니나 동생은 모두 고교에 진학했을 때, 넷째 고모는 형제들보다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하기도 싫다며 할머니에게 숱하게 맞았지만 결국 중학교만 졸업하고 인근 그릇공장에 다녔다.


노동시간이니 최저시급이니 그런 것이 없을 때 아침 7시면 나가 밤 7시. 8시에 퇴근해 와도 힘들거나 어렵다고 투덜댄 적이 없다


대신 사회생활을 하니 옷이며 화장품, 신발, 군것질이 관심사여서 한 달 봉급을 타도 항상 마이너스라 월급날엔 외상값을 받으러 가게 쥔들이 대문을 지키고 있으면 부엌 쪽문으로 살그머니 들어오곤 했다.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할머니와 큰 오빠인 울아버지 몫이었다.


어른들 잔 소리에 밤에 놀러라도 갈라치면 꼭 나를 방패로 데리고 나가는 바람에 나는 맛있는 찐빵이며 과자를 실컷 얻어먹어 좋았다.


그런 고모가 시집을 간단다.

중매쟁이의 소개로 한 시간 거리의 다른 동네로.

신랑감은 대학을 마치고 모두 도시로 나간 형들 대신 막내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형들은 그런 동생에게 시골재산은 모두 '니 거'라고 했으니 비록 중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먹고사는 건 걱정 없다고 했다.


한삼저고리에 연지곤지 찍고 시집가던 날. 어른들은 제 짝을 찾아가니 좋다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울음 속엔 각자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이른 나이에 공장으로 떠 돌며 고생만 시켰다는 생각과 비슷한 처지에서 신랑감을 고르려니 선택의 폭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자책을 는.


고모는 애가 학교에 안 간다 했음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원망과, 친가에서 버스로 한 시간을 가고도 걸어서 십리 길을 들어가야 하는 산 골 오지마을로 떠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울기만 했다.


결혼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고모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쌍꺼풀이 진 곱상한 얼굴이었지만 농사짓느라 햇빛에 그을러서인지 유달리 피부가 거무틕틱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다는 형들은 검은 세단에 운전기사까지 달고 손님처럼 왔다가 손님처럼 떠났다.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 부장이라나 머라나.


그렇게 고모는 산골마을로 시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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