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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의 소소치 못한 하루
산 바람(3)
by
블랙홀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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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오래된 무덤은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이사 가서 3년, 조상 돌아가시고 3년 동안 무탈하면 그게 좋은 거라고 했다.
10년 이상 모셔진 조상무덤은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을 귀찮게 움직이면 노여움을 타서 그렇다고도 하고, 새로 모신 자리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지금은 대부분 화장을 해서 봉안당에 모시지만 전에는 자손들이 돈깨나 벌면 맨 처음 하는 일이 선산을 마련해서 흩어진 조상들을 한 자리에 모시는
거
라고 했고, 그게 가문을 빛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성공했다고 떵떵거리며 묘 이장을 해 놓고. 폭망 하는 이들도 주변에서 종종 봤다.
지금은 자식이 한ㆍ둘이다 보니 선산을 관리하기가 힘들고, 종교적으로 제사를 안 지내는 이들도 많아 화장을 해서 봉안당에 모시는 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화장은 신체가 산화될 때 고인은 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후손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단다. 그래서 산 바람이 일어나지도 않고 후손을 보살피지도 않는단다.
문제는 매장이다.
선산이 있고 묘를 보살펴줄 이가 있다면 굳이 화장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매장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탈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매장은 후손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아 후손을 측은히 여겨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운하면 조상이라 해도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단다. 마치 살아있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매장을 하는 집은 그나마 여건이 좋은 편이니 산소에 치장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산소 좌ㆍ우로 석상대신을 세우기도 하고 무거운 석관을 쓰기도 한다.
지관들은 석관을 통째로 모시면 시신이 쉽게 흙과 접할 수 없으니 세월이 흘러도 석관 안에 그대로 남겨져 좋지 않다고 하지만 탈장을 할 때면 굳이 비싼 석관을 사용하지 않으니 석관을 쓰는 집은 그대로 묻힌다고 봐야 한다.
지역마다 매장 풍습이 다르단다.
대부분은 1m 정도의 깊이로 관이 들어갈 폭만 파서 관을 그대로 세워 안치 후 봉분을 만든다.
다른 방법은 1m 정도의 깊이를 판 후 관이 들어갈 정도로 사방으로 파서 관을 눕혀 모시기도 하고, 관에서 시신만 빼서 눕혀모신 후 봉분을 쓰기도 한단다.
요즘은 화장한 유골함이나 망자의 시신을 묻은 후 평평하게 다진 후 묘비석을 세우기도 한
다
. 개인적으로 난 이 방법을 선호한다.
봉분을 세우는 이유는 산 짐승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상의 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세운다는 설도 있고, 길 가는 이가 밟지 못하게 봉분을 세운다는 얘기도 있다.
탈장을 한 빈관은 그 자리에서 태워버리고 산 아래로 이동시키지 않는 것은 망자의 집과 같으니 재사용하지 않는 거란다.
다만 상여는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관을 이동시킬 때만 빌려 쓰는 것으로 대부분 산 초입에 상여 집이라 해서 서너 평 정도의 슬레이트로 가설물을 세우고 그곳에 보관한다.
명당이네 아니네 하는 곳은 지관들도 콕 집어내기가 어렵단다.
일반인들은 황토 흙이 보슬거리고 양지바른 곳을 명당이라 하고, 땅을 파서 돌덩이가 나오고 물이 흐르는 습지라면 흉 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까다롭단다.
망자의 돌아가신 날, 땅의 기운, 입관하는 시간, 봉분의 방향까지 본다니 매장은 참으로 어렵다
또 명당이라 소문난 곳은 이미 예전 선조들이 사용했을 테니 지금은 남아있는 터에서 고르려면 그 역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씩 남이 쓴 명당 위에 몰래 쓰는 경우도 있단다. 그 걸 첩장이라고 한다. 하긴 탈장을 했다면 잔뼈만 남아 흙속에 파묻혀 있으니 모조리 꺼내기 어렵고, 관째 넣었어도 나무관이라 세월이 흐르면서 썩어서 그 위에 첩장을 하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왕실이야 능지기가 있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지만 고관대작이 묻힌 곳이 후손들이 승승장구하는 자리라면 누구든 탐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다 잘못하면 아래 모신 분이나 위 모신 분이 불편함이 생기면 산 바람 불었다 해서 자손들이 죽어나가고 가산이 풍비백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개천에서 용 나듯 성공했다 해도 오래된 조상이 공동묘지나 허술한 곳에 계신다 해도 함부로 이장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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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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