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다양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프로정신이 있어야 하고, 미래의 사회 인물을 가르치는 자리이니 그만큼 사명감과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만년 교사로 마감할 수도있고 수입면에서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한 호구지책 정도로 생각한다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게 훨씬 낫다.
타 공무원과 비교하면 학교장은 6.7급 정도의 예우(?)를 받는다.
그럼에도 일반 공무원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시험에 합격하면 되지만 교사는 지정 대학, 학과 졸업을 해야하는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4년 대학을 졸업해도 임용고시를 합격해야 임용될 수 있으니 참으로 선발된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교직은 80년 대 중. 후반을 중심으로 제도가 확 바뀌었다.
아마도 필자가 진학하던 때는 먹고살기가 어려워, 대학을 진학한다는 자체가 엘리트 집단으로 구분되었기 때문에 혜택도 많았다고 본다.
중. 고등학교도 의무교육이 아니라서 초등만 졸업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친구들이 대다수였기에 대학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었다. 대학생이란 신분만으로 사회적 잘못은 어느 정도 허용되던 시대였다.
현재는 초등이냐 중등이냐 교대냐 사범대냐 그리고 임용고시에 합격했느냐로 구분이 어렵지만 예전의 교대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다.
중등도 그렇지만 초등교사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했는지.
현재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경우라면 아~~ 옛날이여. 하는 부러움이 절로 쏟아질 것이다.
사범대학은 8도의 국립대와 일반사립대학도 있어 졸업생 수가 많다보니 교대 졸업생만큼의 혜택은 없었다.
1) 80년 대 중. 후반 이전의 교육대학을 보면
(1) 8도에 한 개씩밖에 없는 국립대학이다.
(2) 졸업과 동시에 임용이 보장되었다. 발령의 기준은 성적순이었고 자리가 비는 대로 자동으로 내줬다.
(3) 80년 대 초 까지는 2년제였고 이후 4년 제로 바뀌었다.
(4) 입학금이나 등록금은 사립대의 20~30% 정도지만 재학생에게 향토장학금이라 하여 등록금을 돌려주었다.
(5) 남학생은 방학 중 일정기간 군사훈련만 받으면 하사계급으로 제대하는 특혜가 주어졌다.
(6) 시. 군에서 전교 1-2등 정도 해야 합격할 만큼 입학이 어려웠다.
(7) 초등은 통합교육이라서 시험에 합격해도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탈락되었다. 음악시간에 건반을 다루어야 하므로 열 손가락을 검사했고, 체육시간이 있어 신체적 결함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8) 집안에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탈락되었다. 이유는 학생들에게 사상 주입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9) 지역 한계를 넘어 전국적인 근무가 가능했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경기도에서 제주도로 갈 수 있었다.
* 가정형편은 어려우나 우수한 학생으로 빠른 기간 내에 임용이 보장되는 것 외에 위의 조건들로 응시하는 학생이 많았고, 특히 남학생의 경우 군 면제를 위해 서울대를 포기하고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간혹 부모님이 교직에 있어 권장하는 경우도 많다.
2) 80년대 중반이후~
(1) 4년 제로 대학으로 확정되었다.
(2) 임용 보장이 안되어 반드시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3) 입학금이나 등록금이 많이 인상되었고,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4) 남학생들의 군대 면제 혜택이 없어졌다. 등 등
교대는 정년퇴임, 명예퇴직, 병 퇴직 등을 감안하여 지역별로 선발하니 해마다 정원이 다르다.
필자는 서울교대를 갈 실력이 못되어 지방교육대학을 졸업했지만, 혜택은 같아 2월 졸업 후 5월 말에 발령 통지를 받았다.
우리 직전 선배는 120명이었는데 우리 기수는 그 3배를 증원한 덕에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고등학교 출신은 달랑 5명이었고 (남자 3, 여자 2 ), 우리 학교에서는 4명 지원했지만 나 만 합격했다. 평소보다 예비고사 점수가 20점 이상 높았고 정원은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행운이 따라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