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물러선 자리에서

적당한 거리를 가진 너와 내가 행복한 이유

by 송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이라

내 마음이 더 많이 치우쳐 저 있을 때는

그 선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날의 나는 그 선과 거리를 잘 몰라

내 온마음을 원치 않는 자리에 밀어 넣었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밀어내는 어떤 힘을 느꼈었고

나는 그 상황에 늘 혼자 기분이 나빠

옹졸하게 굴었던 것 같다.


둥긍둥글 살고 싶지만 내가 가진 마음이 너무 많이

한쪽으로 기울고 그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아주 흠뻑 나의 모든 것을 퍼주고 싶었다.

어찌 보면 그냥 내가 좋아서 나를 더 좋아해 달라고

타인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이 어떤 것이 원하는지

그땐 중요하지 않았고

나의 열정과 나의 마음이 외면당한 것 같아 속이 상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적정한 거리를 지켜줘야 유지된다는 것도

십수 년을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한 후 알게 된 것 같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서로 간의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서로가 모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십수 년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만나는 여러 엄마들이 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공유할 것처럼

내 아이와 상관없이 내가 마음이 가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었다.


그러나 아이가 10살쯤 되어 내가 계속 애정을 쏟았던

그 엄마는 내 이아가 어쩌면 불편해하는

친구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십수 년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을 공유하다가

아이가 더 커서 자신의 친구를 본인 스스로 만들고

더 이상 내 아이의 친구 엄마가 누군지 모르는

그 시간이 오면 이때까지 친했던 엄마들과도 조금씩 거리를 느끼고

엄마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찾는 시기가 오고 만다.

그렇게 점점 만나는 시간이 줄고

그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정리가 된다.


그중엔 내 아이가 절대 싫어하게 된 친구의 엄마도 있다.

나는 비록 아니지만 내 아이가 거부한 관계는

나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만나도 말을 점점 잃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린 모두

엄마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찾음으로

갑자기 어떤 선을 더 높이 치게 되는 것 같다.

허울만 좋은 관계는 쉽사리 끊기기 마련이다.


이 시간들이 지나고도 연락하고 만나는 엄마들...

그들이 소위 말하는 동네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내가 정해놓은 선을,

나 또한 그들이 정해놓은 선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불쑥 서로의 생활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을 다시 찾게 된다.

그들도 마찬가지인듯하여

우린 서로에게 매우 오랜만에 연락해도 서운함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듯한 느낌이다.

편안하다.

다시 10대가 된 것처럼 웃기고

무모했던 20대인 것처럼 우리는 즐겁다.


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상황이며

그것은 내 나이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느끼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생활, 나의 건강, 나의 즐거움...

그것이 중심에 있어 때로는 이타적이지 않는 나에게

야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다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생활이 견고할 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편안함을 줄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선이라는 것을 지키며

스스로의 생활을 즐기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딱 한 뼘 그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위로가 필요할 때 어깨를 감싸고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관계가 되려면

확고한 본인의 반경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품을 수 있는 아픔의 무게를 알 수 있어야

모두 안아줄 수 있다.

나이가 먹고 내 꿈인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는 내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며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푸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지키고 있는 이 한 뼘의 아주 가깝고 근접한 거리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서 아주 편하고

넓은 품을 가진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