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모든 시간은 당신과 함께였음을...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20살
우리는 그 당시 유행하던 채팅창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벌써 25년이 지난 까마득한 옛날일..
그는 army라는 아이디로 내가 친구와
채팅을 마치고 나가려던 찰나
주소와 이름을 남겼다. 군인인
그는 그 당시 유행하던 펜팔을 요청했고
마침 그와 나는 동갑이었고 나는 '편지 써줄게요'
한 줄을 남기고 그 방을 나왔었다.
그리고 20살 늦은 사춘기가 온 나는
온갖 무료함과 세상에 대한 나의 반항을
그에게 길고 짧은 글들로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고민과 후회와 기쁨과
각종 감정에 답장을 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합쳐서 500통이 넘는
편지로 인연을 이어갔다.
나는 매 순간 그와 함께 하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는 내 시간 속에 깊이 들어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는 휴가 나올 때 나를 만나기를 원했고,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나는 그 당시 너무 푸짐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고,
일종의 자격지심도 동반했으므로 만나는 것은 어렵다고 1년이 넘게 거절을 했었다.
그는 그런 내게 그냥 친구로서 일단 만나보자고 했고
어떤 말도 안 할 것이고,
만나고 난 후 우리 사이에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영등포 역
(그 당시는 기차가 영등포역에 정차했었다)에서 만났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는데 어쩐지 아주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고, 그 또한 그랬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아주 빠르게 지났고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8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가면서 뜨겁게 만났다.
중간에 나는 유학도 다녀왔고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우리가 실제로 만난 시간을 날로 따지면
300일 정도나 되려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믿었고,
그 믿음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가 되어
우리의 오랜 연애는 어른들의 합의로
결혼으로 바뀌게 되었다.
결혼은 내가 생각했었던 자유를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신혼 3년은 그가 지방발령을 받아
우린 그 시간 내내 마치 여행온
부부처럼 재밌게 지냈다.
나는 나의 자유가 너무도 좋았다.
친정에 있을 때 밤 9시까지의 통금시간을
지켜내느라 그의 손을 잡고 얼마나 뛰었는지,
헤어지기 아쉬워 집 앞에서 9시 땡 할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을 생각하니 밤 12시에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하나가 우리에겐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모르겠다.
그와 나는 정말 소소한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아 보였던 것인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아주 커다란 일도 생겼었다.
살면서 더 이상 나쁜 일은 안 일어나리라는
믿음을 가지며 우리는 그 일도 겪어냈다.
이때부터 우리에게는 동지애가 생겼다.
우리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더 이상 내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늘의 잘못이리라 생각할 만큼 우리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애 8년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했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잘 지내고 있다.
가끔은 무료하고 가끔은 아침부터 밤까지
얼굴을 볼 수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지만
우린 서로의 시간 속에 서 같은 곳을
보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부부간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고 모든 시간과 사건을 공유하지만
본인만의 시간과 본인만의 사생활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별다른 일 없이 살고 있는 건 서로의 선을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고
인정해 주는 관계는 부부뿐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어떤 실패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진정한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서로뿐이다.
수많은 날들을 지나며 분명 어떤 때는 서로에게 무심했거나,
서로를 불편해할 일도 있었다.
그러나 50쯤 되어 지금 나를 보니
누가 나를 이렇게 지지해 주고 이렇게 나를 웃겨주며
나를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결국 서로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당신뿐....
내가 어떤 생각에 잠식되어 나를 잃어버리려 할 때도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겨주던 그 사람은 당신뿐..
나만큼 나를 잘 아는 딱 한 사람.. 그가 당신이다.
오늘 아침에도 실없는 농담과 제스처로 나를 눈뜨면서부터 웃겨주는 당신..
먼 훗날을 그린 나의 꿈에도 늘 당신만은 거기 나와 함께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