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던 것이 그것이 아닐 수도 있을 때 나는 설렘을 느낀다.
카페로 걸어오는 그 길은 늘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하다.
나는 이런 기분을 익숙한 낯섦이라 부르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의 문을 여는 아침. 나는 늘 설렌다.
오늘은 어떤 낯섦이 나를 찾아올까!!
조금 젊었을 땐 익숙한 게 지겨웠다.
정해진 회사로 출근하면서 한숨이 절로 나올 때도 있었고 월요일 아침 한숨을 쉬며 일어나는 건 아마
정해진 이 익숙함이 지겨워서였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내게 익숙함 따위는 없었다.
매일이 아주 스펙터클 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딸은 오늘 일어나서
어떤 말들을 해줄까!!
아이가 클수록 나의 시간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이는 내 영혼을 탈탈 털어 나에게 늘
낯선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엄마의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사소한 사건이 가득하고 사소하지만
아주 큰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때는 낯선 것에 설레거나 익숙함에 안도하지 못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그 조용해진 순간
나의 딸아이는 어디선가 또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의 안전을 위해
흔적을 지우고 또 방어했었다.
아이는 그렇게 나의 찬란한 시간을
나누어 가져가고 잘 커주고 있다.
이제는 청소년이 되어 가끔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제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어도 되고
내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그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 마음에 함께 내 시간을 태운다.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시간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그리고 가끔 그 십몇년의 시간 동안 나는 늘 허둥지둥
아이와의 뭐든 처음인 그 시간 속에서 혼란스러웠고
나는 아이에게 덮어씌워져 나를 찾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중학교 시절 나는 카페를 열었다.
그쯤부터 늘어난 나만의 시간이 있었다.
내 품에서 온전히 십몇년을 보낸 아이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나를 만날 시간이 하루에 고작 몇 시간 되지 않았기에
내게는 그 시간들이 여백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뭘 좋아했더라? 내가 누구였더라?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를 찾아가는 것!
아주 익숙한 나의 모습에서 낯설고 설레는 나를 찾는 것
그것은 내 손끝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거울 속에 늘 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모습이다.
눈빛이 다르고 표정이 다르고
내가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카페를 처음 오픈했을 때도 그랬다.
몇십 년 동안 쿠키를 굽고 이웃과 친구와 나누고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만들었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해 쿠키를 만드는 내 모습은
참 익숙하고도 너무 낯설어서 몸 둘 바를 몰랐었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평일을 가진다. 그 자유로운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그것을 향해
느리지만 꾸준히 가고 있다.
카페에 출근하는 길은 늘 익숙하다.
하지만 매일이 바뀌는 풍경과 달라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낯섦을 느낀다.
아주 익숙한 낯섦이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단골손님들이 오실까?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내게 올까?
오늘 아침 출근과 함께 나를 반긴 건
우리 카페 바로 앞에서 열린 공사장과 커다란 트럭들....
이런 오늘은 당연히 장사가 안 되겠지..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하루를 흔들지 않는다.
이런 일도 당연히 오늘 일어날 일이었겠지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어하며
손님이 오지 않을 오늘 무엇을 하며
즐겁고 꽉 찬 하루를 보낼까 를 생각하며
나는 또 설렌다.
오늘은 이 시커먼 연기가 날리는
공사장을 뚫고 오는 손님들께
작은 쿠키 하나를 선물로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