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불러오는 빗속으로...
우산을 펼쳐든다.
아주 큰 우산을 좋아한다.
그 우산 아래는 나만의 세상이다.
넓게 흩뿌리는 비를 발 앞에 두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비가 오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젖는 게 찝찝하고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빗물이 탐탁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저 비를 맞으면 내 하찮은 감정들이
저 비에 쓸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슬리퍼를 신었다.
그냥 조금 발을 담그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았다.
찰방~!
일부러 빗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빗물이 내 슬리퍼의 경계를 넘어
내 발가락을 적셨다.
착잡한 물에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조금 더 나머지 한 발도 빗속으로...
내 두 발은 이미 빗속으로 아무렇게 않게
내 신체의 일부가 아닌 듯 자유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덩달아 나의 기분도 내 두발과 함께 빗물 속에서
흘러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이제 내 몸만 남았다.
나는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서서히 잡고 있던 우산을 놓았다.
샤워기의 물줄기보다 약한 비가
내 머리 위에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몽글몽글..
나는 내 딸아이의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었지만
일부러 비가 들어가 주기를 바라며
힘차게 걷던 발걸음
우비가 갑옷이라고 되는 듯
우산을 내리고 마구 놀이터를 뛰어다니던
내 딸아이의 어린 시절.
마치 내가 지금 그 아이가 된 듯
우산을 바닥으로 내리고
비를 느끼며 내 하찮고 불안한 마음을
그 빗속에 흘려보냈다.
지금 나는 비가 좋다.
비 오는 날 나는 그 빗속을 걷는 내가 좋다.
나에게 오는 그 감정들이 좋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 감정들
그리고 이제는 비 오는 날이어도
아니어도 늘 가야 할 곳이 있고
하루를 신나게 시작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나를 기다리는 나의 작고 소중한 나만의 공간으로 간다.
작은 순간들을 나누고 작은 기억에 감사하며
웃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
아침에 창문을 두르리는 빗방울 소리에
눈을 뜨면서부터 기분이 좋았다.
촉촉하고 시원한 이 비가 오늘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시원한 가을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더욱 좋다.
오늘도 비는 내 우산을 적시고
내 발 걸을 앞에서 나의 한걸음 한걸음을 반겨준다.
나는 오늘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아지트에 간다.
오늘은 달달하고 고소한 쿠키 향기를 더 해
이 빗속을 걸어 내게 찾아와 주는
모든 사람에게 소소하고 작은 행복 하나를 더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