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마음으로 온전히 당신만을 위해 소망한다.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사람이었나 보다.

by 송설

문득 생각하곤 했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 살아온 만큼의

세월보다 깊어질 수 있을까?

나는 늘 회의적이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시절인연이겠지

그래서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고

관계에 있어서 상냥할 수 있었다.

그들은 늘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그건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겠지.

나는 보호색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가식적이지는 않다.

그 순간 그 관계에서 최선을 다 한다.

나를 보여주지 않을 뿐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건 당연한 결과이다.

나는 말하지 않아야 할 관계와

내가 주도해야 할 관계를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모임이 많았다.

늘 사람들은 나를 챙겼고 늘 모임에 불렀고

나도 늘 그냥 거기에 당연히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그들 사이에서 삐죽 튀어나오지 않고

동그란 테두리에 들어가 있는 한

나를 밀어낼 일도 없다.

그렇게 나의 자리는 늘 나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고

한때는 내가 속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강박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한없이 나를 밀어 넣기도 했었다.

나는 모임이 많은 여유로운 동네엄마였다.

그렇게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날 때쯤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던 그즈음 다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과 강박이

내가 내 모습이 아닌 것에서

오는 것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흘러간다.

모임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던 없던 늘 재밌겠지.


그런 무미건조하고 염세적인 나에게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내 시간에 들어왔다.

아주 불쑥

안 지는 7년쯤?

아이 초등학교때 함께 학부모 활동을 했었다.

4년 전 동네 편의점 앞을 지나다가

"어!! 오래만!!! 나 자기네 근처에 가게 열었어!!

놀러 와~!"

이 짧은 인사가 지금까지

거의 매일을 함께 붙어있는 동업자(?)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이렇게 불쑥 내 시간에 들어온 것은

20대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았다.

우연한 초대가 지금 나의 자유로운 시간들을 만들고

나를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대화를 할수록 내 입을 열게 했고

내 마음의 키를 열고 들어와

나와 비슷한 색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서슴없이 다가와서 내게 훅 거부할 수 없는 바람처럼

깊이 들어와 버린 그녀에게 참으로 배울 게 많았다.

나는 이미 사람들에 대한 대부분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마음이 보여서 일부러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인데

그녀는 투명했다.

봄볕처럼 따스했고 경계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당황해서 매우 조심했었다.

나는 해맑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녀는 너무 맑아서 나로 인해 흐려질까

많이 조심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 특유의 밝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친절하고

선입견이 없는 그 모습에

내 마음도 어느새 맑아지고 있었다.

은연중에 그녀의 발성을 흉내 내거나

그녀처럼 편견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늘 행동했다.

그렇게 밝고 맑은 그녀의 옆에서 나도 조금씩 물들어

내게도 꿈이 생기고 지금도 그 꿈을 향해 조심히 걸어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안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녀의 불안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깊은 위로의 말과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늘 밝고 높은 텐션의 그녀를

수술을 마치고 병원복으로 마주했을 때

사실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몇 년을 매일 보고 함께했는데

당분간 혼자 그녀를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겠지.

아마도 그녀는 특유의 밝음으로 빠르게 회복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적막이 흐른다.

할 일은 있으므로 심심하거나 지겹지는 않지만

진짜 나를 내놓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

함께 공유하며 새로운 꿈을 지지할

사람이 당분간 없는 것.

함께 한 공간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런 사사로운 것들이 가끔 나를 멈추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적막함에 고요한 마음으로

온전히 그녀만을 위해 기도한다.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나의 마음을 다해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그녀가

다시 밝은 마음으로 높은 텐션으로 나를 불러주기를...

그녀가 얼른 회복해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출근과 동시에

온 마음으로 그녀를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곧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