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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매듭 Jan 28. 2024

'살아남는 자'는 '강한 자' 인가

생존의 갈림길

최근에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바가 있다.


지인들이 보여준 모습과, 내게 건네었던 말들을 곱씹으며 생각해 보니 너무 우직하거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필자도 예전에는 하나에 몰두하고 집중하고, 어쩌면 집중을 넘어선 집착을 가지기도 했었다.

허나 그러한 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보단, 스스로를 갉아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세상에서 좀 더 살기 위해 본인의 고집과 성격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니 꿈꿔왔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요한 태도는 없어졌지만,

좀 더 삶에 대해 관조할 수 있게 되었고,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태도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치열한 삶보다는 평온한 삶을 지내고 있는 중이다.


필자도 살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이고

그러한 선택들이 쌓여 현재의 모습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약한 자들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다.

올곧은 나무는 부러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시련과 역경들과 맞서는 것이 아닌 흘려내는 선택을 하기에.


생존이 우선인 자들은 약자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내 생각해보니 그들은 죽음을 택하기보다 살기를 택했고, 결국에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더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삶을 살아가며 적당하게 타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생(生)과 직결되든, 사회(社會)적던간에.


물론 대쪽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지인에게 그러한 방법을 권유해도 아마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으면 해서, 그런 마음에 조언 아닌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겐 응원과 지지가 가장 큰 위안이자 도움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 옹졸한 이기심에 내가 마음 편하자고 좀 더 둥글게 살면 편해질 것이라 믿는

알량한 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연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만약 이어져 있던 인연의 끈이 끊어지더라도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내가 믿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뚜렷한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너무 많이 믿으면 속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믿지 않으면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프랭크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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