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친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연애가 주제로 등장하곤 했다.
대화 말미엔 '내 연애는 너무 어렵고 남 연애 얘기는 재밌더라'라는 그 말을 이따금씩 나누었다.
그 와중에 남의 얘기, 흔히 말하는 험담은 아니지만,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누구랑 누구랑 썸인 것 같다.'
이런 얘기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귓가에 들려오곤 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독일에 유난히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다 보니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유학생과의 연애는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지만...)
딱히 연애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남자는 대학 가서 사귀어도 늦지 않다'라고 얘기했었다.
당시에 나는 별 다른 반발심 없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대학 가면 연애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인연이 없었고,
대학 졸업 이후엔 유학 준비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누가 보면 '모태솔로라는 게 말이 돼? 어떻게 한 번도 없을 수 있어?'하고 놀라겠지만,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쉬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유학 나와서야 더 뼈저리게 느꼈다.
다들 공부 열심히 해보겠다고 홀로 먼 타지로 나와서
가족도 없이 언어도 잘 안 통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외롭지 않으래야 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음대를 졸업하고 일을 구하고 진로 고민을 하며 홀로서기를 준비할 무렵부터
외로움 이전에 진한 고독감이 밀려왔었다.
내 삶은 오직 나만이 나를 온전히 알아줄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고독감.
그때부터였나. 아는 커플들을 (혹은 부부) 만날 때마다
어떻게 만나게 되셨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시게 됐어요?"
이 물음에 다들 진솔하게 대답해주셨지만,
만남의 당사자들은 알 수 없는 영역의 어떤 신비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난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로구먼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일 텐데 정말 그랬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난 나조차도 알 수 없었던 시점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쉽지도 않은 일이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에 찾아왔다.
주변의 연애사를 듣거나 보다 보면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의 제목처럼
인간의 본성이 가장 모아지는 주제가 연애이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이 큰 나머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상상치 못했던 일을 벌이기도 하고,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이 부분에서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유학 준비할 때 레슨 받았던 선생님께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유학생활 중에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보다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 접고 귀국하는 경우도 들은 적이 있다.
그 생활이라는 부분이 커서 유학 중에도 연애를 하는 게 아닐는지. (나의 경우도 포함된다.)
유학생에게 연애란,
그 어떤 커리어든, 나의 행복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걸 알려주는 시그널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