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부터는 피아노를 배우는 성인 학생들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해 살펴보고자 한다. 흔히 알고 있는 MBTI 유형이 모든 사람의 성격을 다 알려줄 수 없듯이 이 글에서 분류한 유형으로 모든 성인 학습자들을 다 분류할 순 없다. 이 글은 학생들의 경향성을 담고 있으며, 때론 여러 유형의 모습을 같이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소개한 유형들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되었으며 약간의 과장도 섞여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학생은 언제나 훌륭한 학생이다. 하지만, 굳이 유형을 분류해 살펴보려는 이유는 ‘나는 어떤 학생인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찾아가려는 데에 있다.
자신에 대한 기준이 유난히 높은 완벽주의자 유형들은 보통 레슨 시작 전에 미리 밑밥을 깔아 둔다.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이 유형을 가만히 보다 보면 특별히 이번에만 연습을 못한 건 아니다. 스스로의 기준으론 연습시간이 언제나 부족한 것이다. 연주를 시작함으로써 레슨은 시작되는데, 몇 마디 연주하고 나서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외친다. “아.. 죄송해요. 다시 칠게요.”
이 유형들은 레슨 때 유독 긴장을 많이 한다. 사람은 누구나 긴장하면 평소에 하던 것보다 제 실력을 내기 어렵다. 이들은 연습 때가 더 잘 됐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선생님의 칭찬도 잘 믿질 못하고, 칭찬이 혹시나 그냥 빈말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격려하기 위한 칭찬도 있지만, 정말 잘했기 때문에 하는 칭찬도 많다. 보통 레슨 시간은 1주 또는 2주마다 1번. (자주 보면 일주일에 두 번) 연습하는 본인은 잘 안 느껴지겠지만, 가끔 보는 선생님의 시선에선 실력이 느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연습을 해서 실력이 느는 경우도 있지만, 적게 연습했어도 쌓인 연습이 어느 순간 연결되며, 뇌가 손의 동작을 이해하고 자동화되는 순간이 찾아와 갑자기 실력이 느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되묻는다. “아니에요. 저 너무 엉망이죠?”
그 누구보다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이 유형은 보통 SNS에서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한 영상을 참고하여 보기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연습의 의욕을 꺾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악보를 읽는 단계이거나 곡이 아직 손에 잘 익기 전에 참고하는 것보다는 곡이 손에 잘 익어졌을 때 ‘나는 이 곡을 어떤 그림으로 연주하고 싶은지’ 고민할 때 다른 영상을 참고하는 게 좋다. 그전까진 다른 사람의 영상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이 높아져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자기비판적인 시선이 유독 강한 이 유형에게는 보통 칭찬과 코칭이 같이 필요하다. 중급 이상의 경우엔 부분연습하는 방법, 테크닉적으로 안 되는 부분의 원인에 대해 다각도에서 접근해 보고 다양한 연습방법을 제시해 주면 좋다. 때론 해결되지 않는 작은 부분에 대해 집착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부분들도 있다.
좋은 곡을 잘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큰 이 유형은 연주기법이나 음악적인 해석 등 여러 면에서 궁금한 점도 많아 질문도 많은 유형이다. 이런 유형은 장기적으로 실력이 향상될 잠재력이 큰 유형이다. 또한 선생님 입장에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이 유형에게 필요한 것은 너그러움과 여유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 받으면 1년이면 보통 52번 레슨 받는데 아프거나 명절 또는 휴가로 레슨을 받지 못한다면 40회 남짓인 셈이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피아노 연습에 시간과 체력을 투자해 1년 안에 실력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란 쉽지 않다. 성인 피아노 수강생들 대부분 본업을 따로 두고, 여가시간에 연습하고 레슨을 받기에 현실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완벽주의자 유형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30분 동안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에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쳐보는 것보다는 단락을 나누고, 잘 안 되는 부분만 연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배우는 곡의 길이에 따라 다를 순 있다.) 잘 안 되는 부분이 한 마디일 수도 있고, 두 마디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습 전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그 어려운 마디를 3분, 그 어려운 마디가 속한 단락을 3분 등 시간을 쪼개 연습해 보길 바란다.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 완벽주의자 유형은 연습이 부족한 사람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쉽게 실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좁은 연습실 안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무대 경험을 통해 격려받는 경험을 하면 유익할 수 있다. 스스로가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나의 연주에 귀 기울여주는 이들을 만나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