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피아노 학생들의 유형들: (2) 금사빠형

by 김클랑


금사빠는 신조어로 ‘금방 사랑에 빠지다'의 축약어이다. 이 유형은 보통 특정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사운드 트랙, 영화음악, 정통 클래식 등 한 장르의 음악이나 특정 음악가의 작품에 깊이 빠지곤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곡에 푹 빠져 연습하다가도 악보를 다 읽고 나면 이내 싫증이 난다. 처음에 악보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 있는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는 희열감과 기쁨에 열심히 연습하다가도 곡이 손에 익어지고 악보에 기입된 여러 가지 악상 기호를 적용하여 표현해 볼 무렵이면 새로운 곡을 들고 찾아온다.


“선생님, 저 이 곡 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요?"

“이 곡 악보 끝까지 봤으니까 이제 다른 곡 치고 싶은데, 이거 어떨까요? 이 곡, 언젠가 꼭 치고 싶었어요."





원하는 곡이 그래도 본인의 수준에 적합한 곡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선생님의 고민이 시작된다. 학생의 독보력(악보를 읽어서 건반의 메커니즘까지 연결시키는 능력)이 괜찮은 경우라면, 선생님이 학생을 위한 로드맵을 세울 수 있다. 선생님은 한 단계 쉬운 곡들을 배운 뒤 도전해 보는 걸 제안할 수도 있고, 수준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할 수도 있다.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독보력


만약 너무 배우고 싶은 곡이 있는데, 악보를 전혀 볼 수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학생 스스로 악보를 볼 수 없다면 과연 원하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을까? 높은 음자리표 위에 있는 멜로디는 읽을 수 있고, 왼손의 코드반주법을 익힌다면 어느 정도의 즉흥연주는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매우 어렵다.


학생 스스로 악보를 보기 어려울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스스로 연습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레슨시간엔 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가르쳐줄 수 있지만, 연습시간엔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연습시간은 학생이 주도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시간. 연습시간은 선생님 없이 혼자의 힘으로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기억해 내고 복습하고 반복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만약 악보 읽는 방법을 잘 모른다면,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을 기억해 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건반 위의 어느 자리에서 연주했는지, 손가락은 어떻게 움직였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피아노를 아예 처음부터 배우는 경우, 기본 자리를 익히고 음의 체계를 배우면서 천천히 연주할 수 있는 음역대를 확장시켜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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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빠 유형의 특징 중 하나는 이런 체계적인 기초과정을 지루해하고, 진부하게 느끼는 데에 있다. 마음은 평소에 듣는 음악들, 시청했던 연주 영상처럼 연주하고 싶은데, 기초를 튼튼히 만들어주는 곡은 전혀 모르는 곡이니 어쩌면 지루한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치 튼튼한 건물을 세울 때 땅을 먼저 파야 하듯이, 악보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은 건물의 토대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한글을 깨치면 글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악보를 읽는 게 서서히 익숙해지고 건반과 연결하여 연주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편, 기본적인 독보력은 좋으나 쇼팽 에튀드처럼 기교가 많이 요구되는 곡에 푹 빠지는 금사빠 유형도 있다. 기교가 많이 요구되는 곡은 손목의 사용과 팔의 무게를 이용한 연주 등 테크닉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몸을 사용하는 방법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연습을 통해 몸에 익어져야 자연스러워지고 부상 없이 본인이 원하는 데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연습하는 시간엔 더욱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연습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앞서 가게 되고,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으로 이어진다면 자칫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배운 기간에 비해 연주할 줄 아는 곡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악보는 쉬운 곡으로 난이도는 낮추고 많은 곡들을 다룸으로써 자신감을 높이는 게 좋을 수 있다.




금사빠 유형에게 필요한 건 긴 호흡으로 음악을 대하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곡이 너무 어렵다면 지금 당장 배우기보다는 장기간의 로드맵을 계획하고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좋아하는 피아노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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