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사랑해 줄 유일한 사람
어려서부터 내 얼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웃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20살 후반 넘어 인식한 것인데,
가만히 힘 빼고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웃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힘 빼고 무표정일 때에는 입꼬리가 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무표정인데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의식적이란 생각을 하고 20여 년을 살다가
언젠가부터 그것이 아닌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아버리며
충격이기도 했다.
내 머릿 속 세상은 초긍정적인데
난 왜 이리 심각해 보일까?
내 무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니?" 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고, 어느 외국인 선생님은 "Why are you so sad?"라고도 했다. 내 무표정은 입꼬리가 내려가 있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기도 한가보다. 어느 친구가 나의 그런 표정은 지적이고 고급스럽다는 방향의 의견을 얘기해 주기도 했지만.
그래서인가, 어려서부터 사진 찍을 때마다 부끄럽고 어색했다. 2000년 대 들어서는 포토제닉이라는 용어가 쓰이면서, "난 포토제닉이 아니다."라며 사진 찍히기를 정중히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나도 용기를 내어 사진 찍기가 어색한 나를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 사진을 보면, 내가 그리 울상이거나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짝거리는 눈빛, 앳된 표정.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나 보다.
어느 지인은 애가 지켜주고 싶고 같이하고 싶은 맑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외모를 꾸미는 행위 자체도 자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것 또한 자신이 트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1인이란 표현.
그렇게 꾸미는 것이 예의라는 인식이 강한 곳에서는 그 문화를 따라주면서 그곳을 존중한다는 표현,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미는 것은 그런 것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표현,
심지어 아무렇게나 시간이 없어서 막 (안) 꾸몄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상황 표현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볼 때, 외모는 자신의 어떤 부분을 표현한 것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의 알맹이를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저 사람이 진짜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은 다행히도 어려서부터의 습관이자 훈련이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이 어떠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순간 감정에 흔들리기보다는 저 사람에게 무엇이 지금 필요한지를 보게 되었다. 만일 매우 좋은 언어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그분의 인격에 감동하고 나도 더 저런 사람이 되도록 그를 감사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 나는 내 얼굴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내 모습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내가 아닌 것 같다.
점점 나의 오장육부가 아픈 곳이 얼굴과 체격에 드러나는데, 그게 내 눈에도 보이니까 더욱 가슴이 아프고
그 점을 거부하는 것 같다.
나의 그런 모습에 미안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하루빨리 가지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부터는 가끔은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올린다던지, 웃기를 일부러 한다던지 하는 노력도 해 보았는데, 그런지 벌써 10여 년이 지난 듯하고, 여전히 내 표정은 심각하다.
생각이 많은 나의 특징이 자연스레 외관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겠다만.
그래서 매일 설레는 에너지는 바깥에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건강에 대한 노력은 내게 평생 숙제인 듯한데, 한 순간의 판단 오류로 내 몸을 망가뜨려 온 몇 번의 결정이
쉽게 회복이 안되고, 이 부분이 내 눈에 보이니 안타까워서 거부감이 든다만,
이 또한 나의 모습이니
어떻게 하면 내 지금 모습을 나로 받아들여줄 수 있을까.
내 몸을 사랑할 사람은 오직 나뿐인데.
한국인의 기준에서,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우선순위에 대해 어떤 기준이 있다.
이에 수많은 이들이 성형도 하고 그 기준의 우위에 있어보려고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자연스레 드러난 것을 일부러 바꾸는 노력에 그토록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해,
그것이 수많은 고민에 의한 선택인지
혹은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단순한 성급한 결정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그 시간과 수고를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가꾸어 드러나도록 하는 데에 들이는 방향보다 나은지?
세상에 있는 것을 적절히 활용하며 살기
20년 전 즈음까지만도 성형으로 인한 자신감으로 삶이 달라졌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더라면
요즈음은 성형이 마치 누구나 해야 하는 것처럼(심지어 성형 관광 코스가 있을 정도) 인식이 되어버린 요즈음
진정한 외모란 어떠한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는 자세를 한 번 더 짚어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특징을 드러내면 더욱 자신 있고 사랑스럽게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