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새로 사는 쪽을 선택할까

설명하는 피로가 만든 선택에 대하여

by 클라 Klarblau

작년부터인가.
변기 물이 멈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차는 쪽 어딘가에서 조금씩 새고 있었다.
물이 다 차는 데 약 5분이 걸렸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사용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물이 아예 차지 않는다거나, 물낭비가 생기는 시점이 오면
그때 수리하거나 교체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 공간을 사용하는 나의 기준도 그랬다.
가능한 한 오래 쓰는 것.
고칠 수 있다면 고쳐 쓰는 것.


그런데 함께 공간을 쓰는 분은 조금 다른 입장이었다.
이 공간이 타인에게 공개될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로 만들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 사이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한 번 더 나의 기준을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그동안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물건이 지금 갖고 있는 그 모습은 그 물건의 이야기이며 역사라고 말해왔다.
모든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낡아간다.

그러한 것들이 이 공간의 결을 만들어 온 것임들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 생각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나는 그 설명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이것의 수리방법을 찾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논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그냥 부속품 사서 교체하세요.”

어디를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왜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고쳐 쓰는 방식’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부속을 사서 교체하는 과정보다
지금 있는 것을 풀어서 고쳐보는 쪽이 더 빠르고,
비용도 덜 드는 선택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결정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인의 소개로 부속을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고,
심지어 그 부속을 대신 가져다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정리되자
이 선택을 거스르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번에는 새로 사서 교체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기능상으로는 좀 더 쓸 수 있는 것을
‘보이는 상태’를 위해 바꾸게 되는 순간,
그 과정에서 설명을 위해 들이게 되는 마음의 피로였다.


나는
강요를 하고 있나? 제안을 하고 있나?
단정을 짓고 있나? 질문을 하고 있나?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조금만 시간을 들여 들여다보면 더 합리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 순간에

그에 대한 가치가 있는지에 때로 멈칫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당장 힘이 덜 드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힘이 드는 쪽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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