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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Feb 18. 2022

14. 앉기, 서기 그리고 걷기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들었던 말 중 가장 거부감이 들었던 말은 ‘마비’란 단어였다. 엄마는 이미 신장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거동에 제한이 생기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엄마가 의식을 되찾기 이전까지는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다. 일단은 엄마가 깨어나는 게 우선적인 숙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심각하게 엄마의 거동을 걱정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엄마가 자가 호흡을 하게 되고 일반 병실로 왔을 무렵이었다. 엄마가 첫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을 때, 엄마를 담당했던 물리 치료사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나도 정확한 답변을 듣기는 어려우리라 생각을 하면서도 물었다.  

 

 “선생님, 저희 엄마 재활 열심히 받으면 나중에 걸을 수 있을까요?”


 내가 선생님에게 질문한 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절망적인 답변을 들을까 두려웠다.


 “어머니의 인지 능력이 좀 돌아와야 재활에 속도가 붙을 겁니다. 재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의지거든요. 일단 어머니가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앉아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침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니 보호자님이 조금씩 시켜 드리세요. 앉기가 되어야 설 수 있고, 설 수 있어야 걷는 것도 가능해요.”

 

 우문현답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당장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운동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날부터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엄마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연습을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앉아 있기 운동이었으나 오른쪽 몸 전체에 마비가 온 엄마에겐 이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엄마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있다가도 몇 초 내에 힘을 빼고 구부정하게 앉았다. 나중에는 답답한 나머지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가 엄마 뒤에 서서 엄마의 허리 가운데 부분을 내 무릎으로 누르고, 이마를 오른손 손바닥으로 눌러 억지로 바른 자세를 만들었다.


 연하 치료를 거부하듯 엄마는 운동을 하는 것도 거부해서 운동을 하기 위해 설득하는 시간이 운동 시간보다 더 많이 걸리곤 했다.


 “엄마, 저녁 방금 드셨는데 지금 누우면 소화도 안 돼요. 우리 딱 20분만 앉아 있다가 누워요. 어제 엄마 엄청 잘 앉아 계셨는데. 너무 많이 누워 있으면 가래가 더 끓어서 엄마 목 아프잖아요. 딱~ 20분만 해요.”


 내가 간청을 하듯이 엄마에게 사정을 하면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말에 따라주었다. 기립근에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고 해서 F.E.S.(기능적 전기 자극)기계도 구해 엄마가 앉아 있는 연습을 할 때 전기 치료도 함께 해드렸다.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땐 엄마가 앉아서 10분도 버티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두 달 정도가 흐른 뒤 엄마는 혼자서도 자세를 30분 이상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S 병원의 물리치료실은 양산의 B 병원과는 다르게 보호자가 치료실에 출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운동 치료 첫날, 치료사 선생님은 엄마의 운동 기능을 평가한 후, 엄마가 그간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와 내가 해왔던 운동과 이전 치료실에서 엄마가 했던 운동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보호자님 엄청 노력을 많이 하셨네요. 힘드셨지요? 앞으로 김지혜 님이랑 운동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처음 만난 치료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엄마와 열심히 운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나의 수고를 누군가가 알아주니 더 힘이 났다. 선생님은 치료를 하면서 엄마와 래포를 쌓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김지혜 님, 피아노를 엄청 잘 치신다고 따님이 그러던데요. 나중에 울산에 가면 저도 피아노 가르쳐 주실 거죠? 운동 열심히 하셔서 얼른 피아노 치러 가셔야죠.”


 엄마는 컨디션이 저조한 날을 제외하고는 운동 치료에 열심히 참여했고, 선생님을 만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선생님과 서는 연습도 하기 시작했다. 엄마 혼자서 서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선생님의 도움 하에 엄마가 서서 버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서는 연습을 하고 2주쯤 지났을 때 선생님은 엄마를 앞에서 안듯이 잡고 보행 연습을 시작했다. 90% 이상 선생님에게 의존한 걷기 연습이었지만 엄마가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벅찼다. 엄마와 운동을 마친 후, 선생님의 이마에는 항상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엄마가 선생님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지를 해서 걸었기에 키가 18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선생님이지만 힘들었을 것이다. 물리 치료사란 직업의 숭고함을 느끼게 했던 선생님은 매일 변함없는 모습으로 엄마를 치료했고,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엄마 옆을 지켜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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