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옥 Feb 11. 2022

13. S 병원에서의 첫날, 낙상하다

 사설 구급차의 삐뽀삐뽀 소리에 도로 위의 차들이 양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시끄러운 구급차 소리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누워 있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오늘 멀리 이사 가는 거 알고 있죠? 새로운 병원에 가서 더 열심히 치료받아봅시다. 눈 좀 감고 쉬고 계셔요.”


 몇 개월째 병원에만 갇힌 엄마가 바깥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설 구급차의 창문은 색시트지로 뒤덮여 있어 불가능했다. 구급차 기사님이 모세의 기적을 일으켜 양산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우리는 서울의 S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입원 수속을 했고, 엄마가 머무를 병실을 안내받았다. 병실은 재활병원 건물 7층 복도 한쪽 끝에 위치한 5인실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병실의 침대 간 커튼들이 꼼꼼히 쳐져 있었다. 병실 입구 쪽 침대를 배정받은 엄마는 간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사설 구급차의 침대에서 병원 침대로 옮겨졌다. 잠시 후 담당 간호사님이 병원 생활과 관련한 설명을 한 후, 침대 머리맡에 붙은 엄마 이름표 옆에 ‘욕창 주의’, ‘낙상 고위험’이라고 쓰여 있는 네모난 자석 2개를 붙이고 갔다.


 우측 편마비가 온 엄마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힘들기에 낙상 사고로부터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슬프게도 엄마는 침대 밖을 벗어나려면 내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통 거동이 어설프게 되는 환자들이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려다가 혹은 화장실에서 낙상사고를 많이 겪는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낙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침대 사이드바를 항상 올려두는 것과 휠체어를 움직이지 않을 때 브레이크로 항상 고정해두는 것 빼고는 낙상과 관련해 나는 특별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머무를 동안 나에게 병간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 간병사님이 있었다. 짐을 풀어 정리하고 곤히 잠든 엄마를 보고 있으니 그분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환자한테 이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제? 나는 내 환자 이사하기 3일 전부터는 훨씬 더 환자 컨디션에 신경을 많이 쓴다. 새로운 병원에 가면 처음 며칠 동안은 환자가 재활도 너무 무리하게 안 하도록 내 선에서 커트도 시키고. 앞으로 엄마랑 병원을 얼마나 돌아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니도 내 말 명심해래이. 병원 옮기기 전후로는 절대 엄마 힘들게 하면 안 된다.”

 

 앞으로 며칠간은 엄마 컨디션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짐 정리를 천천히 했다. 두 시간에 걸쳐 짐 정리를 마친 후 보호자 침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누워 있던 침대 시트 한쪽에 묻은 얼룩이 보였다. 조그만 얼룩이지만 새하얀 병원 시트 위에 묻어 있으니 내 시야에 자꾸만 들어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피곤하고 귀찮기는 했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병원에서 배정받은 휠체어를 복도에서 가지고 와 엄마를 휠체어에 앉혀 드렸다. 좁은 병실에 커튼까지 쳐져 있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이 유난히 더 좁게 느껴져 복도로 엄마와 잠시 나갔다.


 “엄마, 시트에 얼룩이 묻어서 얼른 새 시트로 바꿔서 깔아 드릴게요. 시트에서 먼지가 많이 날 수도 있으니까 복도에서 조금만 바람 쐬고 계셔요. 2분 안에 바로 올게요.”


 내가 병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른 다녀오겠다는 몸짓을 하며 말하니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 들어가 얼른 얼룩이 묻은 시트를 걷어내고, 깨끗한 시트를 침대 모서리에 맞추어 깔았다. 바로 그때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복도로 나가보니 엄마가 휠체어 앞에 넘어져 고꾸라져 있었다. 눈앞이 아득했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니었다. 최근에는 엄마 혼자 등을 떼고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시간도 늘어서 휠체어에서 넘어질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다. 바닥에 넘어져 누워있는 엄마 옆에 주저앉아 엄마의 머리를 먼저 살펴보았다. 다행히 출혈은 없었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아?”


 엄마도 많이 놀랐는지 동공이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며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급하고 놀란  목소리에 병실에 있었던 보호자들이 복도로 나와 엄마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간호사님을 불러 달라는  요청에  보호자가 도와주었고, 나는 엉거주춤하게 겨우 엄마를 바닥에 앉혔다. 잠시 후  복도 끝에서 간호사님  분이 나와 엄마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간호사님들의 도움으로 다시 휠체어에 앉았고, 담당 간호사님은 엄마의  여기저기를 체크하고 갔다.  


 나 때문이었다. 시트를 빨리 씌운다는 생각에 엄마가 몸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휠체어에 탔다는 걸 잊고 있었다. 넘어졌을 당시에 엄마 시야 안에 내가 없어서 더 놀랐을 엄마를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해졌다. 상처도 없었고 엑스레이에서 보이는 문제도 없었지만 하마터면 엄마를 크게 다치게 할 뻔 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S 병원에서의 첫날 나는 엄마를 희생시켜 낙상의 위험성을 제대로 배웠고, 죄책감에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첫 글부터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12. 열한 번 이사한 재활 난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