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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May 10. 2022

17. 콧줄과의 이별 준비

 S 병원으로 온 후 엄마의 다른 재활 치료들은 만족스러웠지만, 연하 치료는 워낙 환자 수가 많아 입원한 지 3주가 지나도 스케줄이 잡히지 않아 속상했다. 입원 기간은 6주밖에 안 되는데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 나만 애가 타는 노릇이었다. 양산의 B 병원에서는 엄마가 하루에 한 시간씩 연하 치료를 받고 저녁엔 나와 함께 삼킴 연습까지 했던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엄마는 여전히 밤 동안 혹은 내가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에 어떻게든 장갑을 풀어 콧줄을 뽑아 침대 옆 바닥에 던져두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병실 안 간병사님들이 던지는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더 후벼 팠다.     


 “어머니가 그 정도 인지는 되는 것 같은데 아직은 안 되나 보네요. 에유. 딸이 고생이야 고생. 엄마도 이제 콧줄 그만 뽑아요. 콧줄 그거 뽑을 때마다 돈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 10만 원도 넘어요.”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커튼 안에서 숨죽여 우는 날이 늘어났다. ‘눈물을 참아야지.’ 란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냥 눈물이 흘렀다. 엄마의 나아지지 않는 인지 상태, 엄마가 콧줄 때문에 느낄 답답함과 불편함, 잡히지 않는 연하 치료 스케줄 그리고 병간호의 고됨이 한꺼번에 나를 짓눌렀다. 엄마가 보여주는 차도는 이런 상황들을 모두 상쇄하기엔 미미했다.           





 중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또는 간병인은 식사를 끼니때마다 해결하기도 그리 쉽지는 않다. 병실 안에는 새벽부터 시끄럽게 돌아가는 호흡기 치료 소리, 환자의 가래를 뽑는 소리, 기저귀 교체를 할 때 나는 냄새 등의 식사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식사 시간 언저리에 대충 즉석밥과 간단한 반찬 몇 개로 끼니를 해결했다.      


 나는 주로 샐러드와 연두부 그리고 요거트로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 때는 엄마의 재활과 투석 시간표에 맞추어 움직이려면 정신이 없어서 대충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건너뛰었다. 저녁 식사는 병원에서 나오는 보호자식을 신청해 든든하게 먹었다. 병원 생활 초기에만 해도 콧줄로 식사하는 엄마 앞에서 내가 입으로 무언가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상당히 죄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맛있게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엄마도 입으로 먹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내 행동을 모방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근거 없는 나의 믿음이 옳았던 것일까? 엄마는 어느 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날도 나는 엄마의 경관식을 콧줄에 연결하고, 연두부와 함께 샐러드를 챙겨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 연두부 진짜 맛있어요. 이 병원은 쿠팡으로 배달을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렇게 신선한 샐러드도 먹을 수 있고 말이에요. 맛있겠지? 엄마도 얼른 드셔야 하는데.”      

 

 괜히 혼자 먹어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연두부를 먹고 있는데 엄마가 왼손으로 연두부를 떠 놓은 숟가락을 가리켰다. 숟가락을 엄마 입 가까이에 대었더니 엄마가 입을 벌리며 숟가락을 든 내 손을 직접 가져가 연두부를 엄마의 입 안으로 넣었다. 연하 곤란이 있어 콧줄 식사를 하는 환자들은 음식이 기도로 넘어갈 위험이 있어 환자에게 함부로 음식을 주면 안 되지만 ‘조금은 괜찮겠지?’라고 무심코 생각하며 음식을 더 드렸다.       


 혹시나 연두부가 기도로 넘어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엄마 목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엄마가 연두부를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식도로 연두부가 잘 넘어갔는지 기침도 하지 않았다. 한 번 연두부 맛을 본 엄마는 계속해서 연두부를 가리켰고, 연두부 한 모를 뚝딱 다 드시고 나서야 드시는 것을 멈추었다. 내가 보는 이 광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옆에 가서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엄마가 입으로 드실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진짜 고마워 엄마. 앞으로 엄마 못 드셨던 음식 다 먹읍시다. 삼킴 연습도 우리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이 지긋지긋한 콧줄 뽑아 버려요, 진짜 고마워.”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고맙다며 연신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닭가슴살 샐러드를 손으로 가리켰다. 칼로 샐러드 안의 닭가슴살을 잘게 썰어 조금의 야채와 함께 입에 넣어 드리니 엄마는 샐러드도 곧잘 삼켰다. 점심에는 내가 먹던 라면의 면발도 조금 드셨고, 저녁에는 보호자식 반찬으로 나온 계란찜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엄마가 입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머지않아 콧줄을 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날아갈 것 같았다.      


 저녁 식후 회진 시간, 엄마 담당의 선생님께 들뜬 목소리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보호자님. 그래도 아직은 어머니 입으로 드시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어머니가 잘 삼키시는 것처럼 보여도 음식 일부가 기도로 넘어가서 폐에 염증이 생기면 큰일이에요. 어떤 환자분들은 사레도 안 들리고, 잘 드시는 것처럼 보여도 입으로 먹는 모든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는 분도 간혹 있거든요. 제가 연하 검사 스케줄을 최대한 빨리 잡아 볼 테니 검사에서 통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께 음식 드리지 마세요. 어머니 지금 침 삼키시는 것 보아서는 충분히 음식도 드실 수 있을 것 같으니 큰 걱정 하지 마시고요.”      


 그날   머릿속에 엄마와 씨름하며 삼킴 연습을 했던 모든 날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평생 입으로 먹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전 병원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도 이제는 깨끗이 잊을  있을  같았다. 엄마가 입으로 먹게 되는 날이 이렇게나 갑자기 찾아오리라 상상을  했기에 벅찬 감정이 종일 가라앉지 않았다. 나만 엄마의 콧줄을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알았는데 그동안 엄마도 콧줄과 이별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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