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 음식, 저 음식을 입으로 맛보기 시작하면서 나도 간병 생활을 지속해 나갈 힘을 얻었다. 이제는 엄마가 곧 콧줄을 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리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엄마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할까? 엄마랑 어떤 간식을 사서 산책하러 가면 좋을까?’란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엄마의 삼킴 기능이 온전치 않기에 걱정하는 간호사, 간병사님들의 눈을 피해 커튼을 치고 일 평 남짓한 엄마와 나만의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담당의 선생님이 엄마가 연하(삼킴) 검사를 통과할 때까진 입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위험하다고 나에게 몇 차례 주의는 줬지만 나는 엄마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신 담당의 선생님은 회진 때 엄마와 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도 모르는 체해주셨고, 연하 검사 스케줄도 빠르게 잡아주셨다.
연하 곤란이 있는 환자들은 대개 VFSS 검사(video fluoroscopic swallow study:비디오 투시 연하 검사)를 해 삼킴 능력을 테스트 받는다. 이 검사는 엑스레이처럼 환자가 음식을 삼키면 그 음식이 이동하는 과정을 입으로 넘기는 순간부터 투시하여 볼 수 있는 검사인데, 음식이 식도로 잘 넘어가면 환자는 콧줄을 제거하고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때, 음식의 일부가 기도로 조금씩 새거나 사레가 들리는 환자는 콧줄을 유지해야 하고, 연하 곤란 상태가 길어지겠다고 판단되면 환자에게 콧줄 대신 뱃줄을 의료진이 권유하기도 한다.
엄마의 연하 검사 날이었다. 연하 검사실 앞에는 콧줄을 한 환자분들이 보였고, 나처럼 애태우고 있는 보호자들도 보였다. 검사란 이름 아래 조금 긴장은 됐지만, 그날 아침에도 엄마는나와 연두부 한 모를 맛있게 먹었기에 전혀 걱정은 하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검사에서 통과할 것이고 난 이제 엄마에게 합법적으로 음식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만 하고 있었다.
검사실에서 누군가 엄마의 이름을 불렀고, 나는 엄마의 휠체어를 검사실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검사 중에 보호자는 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갑자기 검사실 안에서 선생님 한 분이 엄마의 보호자를 찾고 있었다. 엄마가 계속 음식 먹기를 거부하는 까닭에 검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 엄마가 편하게 느끼는 내가 음식을 한번 드려보라고 말했다. 내가 숟가락을 엄마 입 가까이에 대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한껏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주사기에 요거트를 주입해 억지로 엄마의 입 안으로 넣으려고도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최근 나와 함께 맛있게 음식을 먹던 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게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마는 검사실에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날 저녁, 엄마가 완강히 음식을 거부한 이유를 담당의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검사실에서 엄마가 먹게 되는 음식물에는 조영제가 들어가 있어서 음식 맛이 이상할뿐만 아니라 연하제(음식의 점도를 높이는 가루) 때문에 식감도 좋지 않다고 했다. 담당의 선생님은 추측이라고 했으나 내가 생각해도 그 이유가 맞아 보였다. 맛없는 음식을 몇 번만 더 삼키면 모든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데 그것까지 생각할 수 없는 엄마는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이후 엄마는 연하 검사를 1주에 1번씩 세 차례는 더 받았지만, 번번이 검사실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병실에서 나에게 더 많은 음식을 요구했다.
엄마의 이런 상황에 이리저리 수소문해보니 부천의 A 병원에 계시는 S 교수님은 연하 재활에 있어 명성이 자자해 콧줄을 가진 환자들이 그 교수님을 많이 찾아간다고 했다. 다행히 아빠는 바로 A 병원으로 엄마가 전원을 할 수 있도록 교수님과 일정을 잡았고, 엄마와 나는 S 병원에서 A 병원으로 향했다. S 교수님을 만난 첫날, 나는 그간 답답했던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엄마의 그간 상황에 대해 교수님께 차근차근 설명했다.
“따님께서 여러모로 어머니 회복에 신경 쓰느라 고생이 많았겠네요. 비디오 투시 연하 검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쓰이는 검사인데 어머님이 계속 거부를 하셨다면 여기서는 굳이 이 검사를 시도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대신 내시경으로 하는 연하 검사(Fiberoptic Endoscopic Evaluation of Swallowing, FEES)를 받으시면 되겠어요. 이 검사의 경우 비디오 투시 검사에 쓰이는 음식물들에 넣는 조영제를 넣을 필요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검사받는 것에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따님이랑 잘 드시는 음식 그리고 마시는 것 몇 가지를 검사 당일에 챙겨오세요. 잘 드시던 것을 검사실에서 드시면 심리적으로도 더 안정돼서 괜찮으실 거예요.”
교수님께서 나에게 연하 검사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만 하셨을 뿐인데 이미 엄마의 콧줄을 뺀 느낌이었다. 내시경 연하 검사는 교수님과의 첫 만남 일로부터 5일 후였다. 나는 크림이 섞인 카스테라빵과 바나나 우유 그리고 딸기 요거트를 준비해 엄마와 함께 연하 검사실로 향했다. 교수님께서 엄마의 코안으로 내시경 카메라를 넣으셨고, 나는 준비한 카스테라를 조금 떼어 엄마 입 안으로 넣었다. 엄마는 내시경 카메라 때문인지 표정을 살짝 찡그리긴 했지만 빵을 몇 번 씹어 삼켰다. 엄마가 빵을 삼키자마자 잘게 부서진 빵 조각이 엄마의 식도를 지나가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빵을 몇 차례 더 자연스럽게 삼켰고, 바나나 우유도 한 모금 마셨다. 교수님께서 내시경 카메라로 몇 번 ‘찰칵,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음식을 잘 드시는데 연하 검사에서 번번이 통과를 못 하셔서 따님이 정말 속상했겠어요. 어머니 이제 콧줄은 빼고 식사하셔도 되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30년 남짓한 내 삶을 돌이켜 보면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경험은 수없이 많았지만, 기뻐서 눈물을 흘린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지어 보였던 미소, 내시경 모니터로 보았던 빵 조각들, 엄마가 편안하게 음식을 먹는 모습 그리고 나의 감사 인사로 메워진 검사실 안의 공기. 5분도 채 되지 않는 검사실에서의 기억은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다. 엄마가 쓰러진 지 6개월이 훌쩍 지난 7월의 중순, 공교롭게도 엄마는 예순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 콧줄과 이별을 할 수 있었다. 반년 동안 엄마의 생존을 책임진 고마운 녀석이지만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