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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Apr 21. 2022

16. 고마운 로봇과의 만남

 

 S 병원으로 오기 전, 나는 엄마가 이 병원에서 로봇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기뻤다. 뇌 질환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어보면 로봇 치료가 실제 환자분들의 보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로봇을 보유하고 있는 병원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에 엄마에게는 S 병원에서의 로봇 치료 기회가 소중했다.       


 나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S 병원에 왔는데 막상 재활 시간표를 받아 보니 엄마에게는 로봇 치료 처방이 나지 않았다. 담당 전공의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로봇 치료 대기 환자가 많이 있어서 엄마가 바로 치료를 시작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입원한 지 2주가 되었을 때 엄마가 치료받을 순번이 돌아와 나는 치료 시간에 맞추어 엄마와 함께 <로봇 재활 치료 센터>라고 적힌 곳으로 향했다.




 치료실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자 로봇이 내는 기계음이 뒤섞여 들렸다.

    

‘윙-철컥, 윙-철컥’


 로봇의 개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로봇의 요란한 기계음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치료사 선생님은 처음 보는 환자와 보호자임을 알아채고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며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혹시 오늘부터 로봇 치료 시작하시는 김 지혜 환자분 맞으실까요?”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한층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네, 맞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치료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드디어 저희 어머니도 로봇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네요.”


“로봇 치료를 원하는 환자분들은 많은데 보시다시피 로봇이 몇 대 없어서 항상 대기 환자가 밀려 있어요. 앞으로 어머니 로봇 치료 저랑 열심히 한 번 해보아요!”


 엄마는 에너지가 한껏 묻어나는 선생님의 응원에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엄마가 타게  로봇의 이름은 에리고(Erigo)였다. 선생님은 엄마를 휠체어에서 경사 침대 형태로 생긴 로봇으로 이동해 앉혀 드린 , 조심스레 엄마를 눕혔다. 그러고 나서 엄마의 오른쪽 다리에 전기 자극 패드를 붙였다.   발등, 발목, 허벅지, 허리, 어깨,  모든 부위를 벨트를 이용해서 로봇에 엄마 몸을 안전하게 고정했다. 벨트로 세게 고정해야 하는 허벅지나 발등 부위에는 환자복 위에 두꺼운 수건을 덧대어 혹시나 벨트의 압박으로 피부에 생길 상처도 예방해 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선생님은 로봇의 경사를 조절해 누운 상태의 엄마를  있는 자세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로봇을 움직이게 하니, 엄마가 마치 스스로 걷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 나왔다.     


 평소에 꿈쩍도 하지 않는 엄마의 오른쪽 다리가 굽혀졌다 펴졌다 하며 걷는 동작을 하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엄마가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꿈으로만 꾸던 엄마의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로봇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리고 로봇의 정면에는 환자가 자신의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큰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엄마도 나처럼 거울 속 움직이는 본인의 다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가 몇 분 동안 로봇을 안정적으로 타는 모습을 확인한 치료사 선생님이 로봇 치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로봇 치료는 단지 보행에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 뇌졸중 환자분들의 경우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앉거나 누워있기 때문에 이렇게 로봇 치료를 받으며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혈관계 기능과 하체 근력 향상에 큰 도움이 돼요. 어머니께서 평생 하셨던 '걷는다'는 행위를 로봇에 의지해서 할 수 있게 해, 몸이 걷는 행위를 다시 기억하도록 돕는 게 주목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엄마가 로봇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받을 수 있는 로봇 치료 횟수가 20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커졌다. 엄마가 이렇게 좋은 치료를 무한정 받을 수 없다는 게 슬펐다. 엄마에게 좋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데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무력감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로또에 당첨돼서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에 버금간다는 이 에리고 로봇을 사서 엄마에게 매일매일 태워 주고 싶었다. 물론 로봇 치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에리고 로봇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엄마가 다시 걷는 모습을 본 그날만은 에리고에게 감사한 나의 마음을 십분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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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hocoma.com/solutions/er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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