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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Dec 24. 2021

2.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


 엄마가 쓰러지신  상황은 이러했다. 엄마는 본가에서 외할머니 그리고 아빠와 살고 계시고, 주무실 때는 외할머니와 방을 공유한다. 그날도 주무시면서 투석을  준비를   화장실을 가셨는데, 할머니께서 화장실에 엄마가 너무 오래 있는  같아 이상해서 한번 가보셨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신 엄마가 할머니를 겨우 쳐다보시면서 희미한 목소리로  마디를 하셨다고 했다.


“고서방 불러라…”


 엄마의 이 말 한마디에 외할머니는 아빠를 급히 불러오셨고, 엄마는 몇 분 후 119 구급차에 실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셨다. 그 병원에선 수술실과 입원실이 부족하여 급하게 응급 처치만 받은 후 엄마는 대학병원으로 보내졌다. 쓰러지시고 나서 이틀 뒤, 엄마를 담당하시는 교수님과 가족 면담이 잡혀 나도 급히 부산에서 울산으로 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에 출입하는 것부터 쉽지는 않았다. 입구에서 보안팀 직원이 병원 방문 목적을 세세하게 물었고, 중환자실에 연락을 해 아빠와 오빠 그리고 내가 모두 가족 면담 대상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우리는 출입을 할 수 있었다. SICU [외과계 중환자실]이라고 적힌 곳에 도착하니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의료용 가운과 모자를 쓰고 중환자실 안에 들어갔다. 눈부시게 밝은 하얀 조명으로 빛나는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여러 기계음이 뒤섞여 들려왔고 분주한 의료진들의 모습 뒤로 환자 침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러 환자 침대들을 둘러보며 엄마를 찾았지만 똑같은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엄마만 한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김지혜 환자분 가족 맞으시지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간호사 데스크 쪽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엄마 담당 교수님께서 우리 가족을 향해 걸어오셨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엄마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다.




“먼저 어머니께서는 투석을 하시기 때문에 다른 환자분들에 비해서 혈관 출혈의 위험성이 더 높습니다. 우리도 어딘가에 부딪혀서 다치면 그날보다는 그다음 날이 더 아픈 것처럼 뇌도 마찬가지인데요. 처음 출혈이 일어나고 나서 1주일 정도까지는 뇌압이 계속 올라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집니다. 뇌압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머리에 관을 삽입했는데, 어머니께서 당분간 잘 견디셔야 생명에 위험이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기관을 절개하는 시술을 해야 어머니께서 호흡을 좀 더 편하게 하시고, 자가호흡이 가능해질 겁니다. 보호자분 입장에서는 목에 구멍을 낸다는 것에 거부감이 드실 수는 있지만 환자분 입장에서는 기관절개를 하시면 훨씬 호흡하기가 편안합니다. 그리고 뇌는 일단 손상이 일어나는 순간 후유증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좌측 뇌에 출혈이 있었기 때문에 운동, 인지 그리고 언어기능에 장애가 남을 것입니다.”




 담담한 목소리 톤을 가지신 교수님의 설명에 내 감정은 더 복받쳐 올랐다. 교수님께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엄마 침대가 어디에 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알려주셨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가리키신 침대에 누워계신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고, 머리 쪽에 붕대를 칭칭 감으셔서 얼굴의 형체를 알아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에 엄마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내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엄마 손이라도 잡고 이 힘든 상황을 같이 이겨내자고 응원하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엄마를 위해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답답했다. 마음속으로 엄마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고, 뇌질환 환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여러 환자분들의 케이스들을 보며 희망을 가지기도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엄마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매일 저녁 7시쯤 중환자실 간호사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였다. 비록 엄마가 눈을 뜨셨다거나 드라마틱한 회복을 하셨다는 소식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큰 이벤트는 없었기에 엄마가 곧 깨어나시리라 믿고 있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기에 이 힘든 고비도 잘 넘기실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2월 13일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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