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옥 Dec 25. 2021

3. 엄마의 기나긴 겨울잠

 엄마가 쓰러지신 1월 31일 이후 우리 가족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렸지만, 현실 속 시간은 야속하게도 계속 흘러만 갔다. 엄마는 수면 치료를 받고 계시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호사님께서 설명하셨다. 하지만 매일매일을 활동적으로 사시던 엄마가 며칠째 주무시기만 하니 이성적으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지만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덧 설 연휴가 다가왔고 우리 가족의 허탈감은 더 깊어졌다. 딸인 내 마음이 이런데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본인의 딸이 쓰러진 것을 제일 처음 발견하고, 그 딸이 뇌를 다쳐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속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지내신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니 그 공허함이 더했을 것이다.


“집 나간 너거 엄마는 언제 올려나..”


 전날 밤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 와중에도 손자, 손녀가 왔다고 소고기가 양껏 들어간 떡국을 끓여 주셨다. 무슨 맛인지도 모를 떡국을 먹고 있으니, 콧줄로 식사를 하고 있을 엄마 생각에 또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입으로 먹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2월 13일, 그날 저녁에도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엄마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주무시는 중이고 소화는 잘하고 계신다는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연락이었다. 오늘 하루도 엄마가 무사히 잘 지내셨다는 소식에 감사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는데, 자정이 가까운 시각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중환자실에서 온 전화였다.


“김지혜 환자 보호자님 되시죠? 환자분 재출혈이 일어나서 지금 바로 개두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보호자님께서 동의하시면 바로 수술 시작할 예정입니다. 수술 준비는 모두 완료된 상태입니다.”


 아빠와 나는 스피커폰으로  수술로 인해 엄마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수술에 동의했다. 깨어나실 날만 기다렸는데 재출혈이라니.. 엄마가 머리뼈를 자르 수술까지 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빠랑 나는 오열을 하며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빌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 수술은 끝났지만 막상 머리를 열어 뇌를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뇌부종이 괜찮아질 때까지 일단 수면치료를 병행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전 날 저녁까지만 해도 엄마가 하루빨리 깨어나시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는데 엄마가 수술로 겪으셨을 고통을 생각하니 차라리 시간이 많이 걸릴지언정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가 따뜻한 가족의 손길도 한 번 못 느끼고 수술실에 혼자 들여보내진 사실이 내 마음을 너무 아리게 했다. 24시간 정신이 없는 중환자실에서 홀로 외로워하지 않기를, 주무시는 동안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응원하고 있는 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다시 기약 없는 엄마의 겨울잠이 시작되었다.





이전 02화 2.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