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러지신 1월 31일 이후 우리 가족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렸지만, 현실 속 시간은 야속하게도 계속 흘러만 갔다. 엄마는 수면 치료를 받고 계시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호사님께서 설명하셨다. 하지만 매일매일을 활동적으로 사시던 엄마가 며칠째 주무시기만 하니 이성적으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지만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느덧 설 연휴가 다가왔고 우리 가족의 허탈감은 더 깊어졌다. 딸인 내 마음이 이런데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본인의 딸이 쓰러진 것을 제일 처음 발견하고, 그 딸이 뇌를 다쳐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속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지내신 지도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니 그 공허함이 더했을 것이다.
“집 나간 너거 엄마는 언제 올려나..”
전날 밤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 와중에도 손자, 손녀가 왔다고 소고기가 양껏 들어간 떡국을 끓여 주셨다. 무슨 맛인지도 모를 떡국을 먹고 있으니, 콧줄로 식사를 하고 있을 엄마 생각에 또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입으로 먹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2월 13일, 그날 저녁에도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엄마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주무시는 중이고 소화는 잘하고 계신다는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연락이었다. 오늘 하루도 엄마가 무사히 잘 지내셨다는 소식에 감사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는데, 자정이 가까운 시각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중환자실에서 온 전화였다.
“김지혜 환자 보호자님 되시죠? 환자분 재출혈이 일어나서 지금 바로 개두술에 들어가야 합니다. 보호자님께서 동의하시면 바로 수술 시작할 예정입니다. 수술 준비는 모두 완료된 상태입니다.”
아빠와 나는 스피커폰으로 그 수술로 인해 엄마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눈물을 흘리며 수술에 동의했다. 깨어나실 날만 기다렸는데 재출혈이라니.. 엄마가 머리뼈를 자르는 수술까지 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빠랑 나는 오열을 하며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빌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 수술은 끝났지만 막상 머리를 열어 뇌를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뇌부종이 괜찮아질 때까지 일단 수면치료를 병행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전 날 저녁까지만 해도 엄마가 하루빨리 깨어나시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는데 엄마가 수술로 겪으셨을 고통을 생각하니 차라리 시간이 많이 걸릴지언정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가 따뜻한 가족의 손길도 한 번 못 느끼고 수술실에 혼자 들여보내진 사실이 내 마음을 너무 아리게 했다. 24시간 정신이 없는 중환자실에서 홀로 외로워하지 않기를, 주무시는 동안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응원하고 있는 나를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다시 기약 없는 엄마의 겨울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