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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 글쟁이 Mar 17. 2024

시누이들은 모르는 택배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ㅇㅇ애미야~ 집에 기름 있냐?"

"기름요? 무슨 기름요?"

"참기름 말이다"

"지난 명절에 주신 거 아껴먹는다고 아직 뜯지도 않은 거 한병 있어요"

"들기름은?"

"그것도 냉장고에 좀 있어요"

"그래? 없으면 내가 보내주려고 했지 그럼 쌀은?

내가 느그 주려고 하나 사놨다."

"어머니 드세요 저희야 여기서 사 먹으면 되죠"

"혼자 있는데 무슨 쌀을 그렇게 먹는다고... 느그는 많이 먹잖아"

"좀 있으면 어머니 생신이니까 그때 갖다 먹을게요 힘들게 택배 보내지 마세요"


어머니가 계신 곳은 시골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곳이라

택배가 2~3일에 한 번씩 오고

택배를 보내려면 마을회관에 갖다 놓아야 한다.

마을회관까지 가려면 택배를 자전거에 싣고 가야 한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에겐 죄송한 일이다.


알았다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는데, 그날 저녁에 또 전화를 하셨다.


"ㅇㅇ애미야~ 내가 오늘 파김치랑 멸치 볶은 거 해서 택배 보냈다 쌀은 너 온다 해서 안 보냈다"

"파김치요?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파김치란 소리에 택배를 힘겹게 갖고 가셨을 어머니를 잊고 말았다.

며느리가 파김치를 좋아하는 걸 아시고 어머니는 매년 파김치를 보내주신다.


"근데, 니 파김치만 쏙 빼고 나머지 버리고 그러지 마래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걸 왜 버려요?"

"아니 요즘에 시엄니가 반찬 같은 거 싸주면 가다가 버리고

택배는 뜯지도 않고 버린다 하데?

그니까 니는 그러지 말란 말이다"

"에이, 안 그래요 울 집 식구들이 어머니 반찬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사실이다. 소싯적 자그마한 식당을 하셨던 분이라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정말 예술이다.


다음날 어머니가 보내신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서둘러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집으로 정중히 모셨다.

열어보니....

파김치, 멸치볶음, 냉이 한가득, 고구마, 고추튀각조림,

아직 어린 대파까지..

하나하나 비닐봉지를 꺼내다 보니 파김치가 샜는지 김치 국물에 젖은 흰 봉투가 하나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오만 원권 네 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들어있는 쪽지하나


'ㅇㅇ이 점심값'


어제 통화 때 대학생들은 학생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야 된다고 했더니

손자 밥 굶을까 봐 넣어놓으셨나 보다.

그래서 뜬금없이 택배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나 보다.


전화를 드렸더니

"가스나들한테는 말하지 마래이. 맨날 자기네들은 안 주고

니만 준다고 뭐라 칸다. 택배 왔단 말도 하지 말고"

오늘도 나는 시누이들은 모르는 택배를  받았다.



예전에 추석명절에 시댁에 안 가게 되어서 좋다는

글을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도 많이 달아주셨는데

안 좋은 글도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댓글이


'당신도 꼭 당신 같은 며느리 보게 되길 바래요'


좋은 뜻은 아니었을 거다.

추석에 일도 많고 또 하루쯤 안 가는 게 좋아서 글을 썼는데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셨나 보다


확실한 건!!!!!

나와 어머니는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딸 같을 순 없지만

어느 고부사이보다도 좋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렇죠 어머니?)


언젠가 내가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 저 며느리로 다시 또 하라고 하면 안 하고 싶으시죠?"


어머니는 생각에 잠기신 듯 말씀이 없으시더니...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너가 시집왔을 때 음식도 못하고

그래서 걱정했는데(음식은 지금도 못해요 어머니 ㅜ.ㅜ)

그래도 뭐라도 해 먹고 사니 다행이고, 너가 좀 깔끔하지 못해서 그렇지(ㅜ.ㅜ)

우리 집 가스나들이 니처럼 한다고 하면 나는 걱정이 없을 것 같다"


비록 며느리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나에겐 최고의 칭찬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 시댁식구들 얘기를 써보고 싶다.


'시아버지는 왜 둑을 호박밭으로 만드셨나?'

'시아버지는 30분 있을 서울에 왜 3시간을 오셨을까?'

'시어머니의 선전포고'

'왜 우리 큰 시누이는 비닐하우스에 숨어 울고 있었나?'

'박씨집 며느리가 김장 마치고 응급실에 실려간 까닭은?'

'작은 시누이는 오빠들을 왜 잡는 걸까?'


등등, 크고 작은 우리 식구들 얘기를 말이다.



- 미리 보는 우리 어머니 이야기 -

어느 해 명절 때 고스톱을 좋아하는 시누이들은

저녁을 먹고 치우고 어김없이 판을 벌렸다.

매번 제일 먼저  전 재산(?)을 탕진하고

판에서 쫓겨나던 내가 그날은 적극적으로 거실 바닥에

노름판을(?)을 만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오늘 집문서 날린다 생각하세요 다들~"


 '그동안 얼마나 밤 잠을 설치며

인공눈물의 도움을 받으며 핸드폰 고스톱을 쳤던가?

다 이날을 위함이 아닌가?

고스톱 머니 12억 타짜의 실력을 보여주리라~'


그러나 실전으로 다져진 고수들은

나에게 단 한 번의 선도 내어주지 않았다

호기롭게 지갑에서 꺼낸 전재산,

백 원짜리 32개(올해는 고스톱을 내가 접수하리라며

미리 준비까지 했는데...), 천 원짜리 7장을 다 잃고

판에서 쫓겨나기 직전, 옆에 구경하시던 어머니는

삼천 원을 보태주셨다.

그러나 그것마저 몇 판 만에 잃고 700원이 남았을 때

어머니는


"야~ 야~ 비기봐라 그것도 하나 못하나?"라며

비록 딸들이지만 고스톱계의 고수들이 장악한 판에 며느리를 구하려 뛰어드셨고 

그 며느리는 일찌감치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쉬다 보니 문득 내 지갑이 눈에 띄어 열어보니

들어있던 72천 원..


간밤에 시누이들을 탈탈 터셨나 보다.

다시 시누이들에게 돌려 주려하니


"됐다. 노름판에서 딴 돈 다시 주는 거 아이다! 잃어봐야 다시는 하자 안 하지"


무림의 고수는 진정 어머니셨다.

(존경합니다 어머니)


이후 어머니는 우리들과 고스톱을 칠 수 없었다. (가족들이 고수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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