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_프랑스 파리 여행 6박 7일
2022.11.09
오전 5시 30분
몇 년 만에 가는 공항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역병이 전 세계를 감염시키는 바람에 생각지 못하게 나의 시간들이 오랫동안 방 속에 묶여있었다. 집콕해 왔던 시간들을 드디어 뒤로하고 정반대의 나라로 간다니 이 순간이 정말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짐을 싸고 정리하느라 두 시간도 못 자고 나왔다. 올해 기후 이상으로 11월에도 유럽 날씨가 전반적으로 따뜻한 편이라고 하여 짐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고민하느라 넣고 빼고를 반복하고 집청소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잠 많은 내가 잠을 못 자고 나오니 정신이 몽롱했다. 초겨울의 새벽 공기가 얼마나 차가운지 몰랐는데 얼굴에 휘갈기는 11월의 찬 바람을 맞으니 잠이 확 달아났다. 암흑 같은 새벽을 생각했는데 오전 6시는 누군가에게는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닌가 보다. 길에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은 원래 계획대로 안된다.
공항 리무진을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분명 내가 탈 때만 해도 사람이 몇 명 없었는데 중간에 눈을 떠보니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들 나와 같은 심정으로 코로나가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렸다 나온 사람들 같았다. 다시 한참을 자고 있는데 시끄러운 경고음에 화들짝 깼다. 차창밖을 보니 소독약차가 지나간 것처럼 지독한 뿌연 안개가 도로를 꽉 채워져 코 앞의 상황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안개로 인해 공항 도착시간은 이미 훌쩍 넘긴 상황이었고 공항 근처도 못 간 것 같은데 체크인 완료까지 40여 분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하니 체크인 마감 5분 전으로 나왔다. 세상에... 일부러 서둘러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안개로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온라인 체크인은 해뒀지만 수화물을 부쳐야 해서 내리자마자 짐을 들고 어떻게 뛸 것 인지 머릿속으로 로드맵을 그려보기도 하고 만약 정말 운나쁘게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래, 남의 나라 가서 난리 나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못 가는 게 낫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던가? 이런 생각이 드니 들썩이던 엉덩이를 붙이고 의자에 편히 기대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극적으로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면세점 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비행기는 제때 탈 수 있었다.
이번 파리행은 정말 신기한 여행길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온라인으로 미리 잡아두었던 창가 자리에 앉는 나는 내 옆은 누가 앉을까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도 옆 두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신기하게 딱 내 옆 두 자리와 내 앞에 가운데 한 자리만 제외하고 모든 좌석이 가득 차있었다. 덕분에 눕코노미로 파리까지 편하게 올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무사히 파리 입성!
나비고 교통카드를 만들고 지하철 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한테 길을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어쩜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간 유심은 뭐가 문제인지 데이터가 안 터졌고 캡처해 둔 호텔 지도를 보고 대충 어림잡아 걸어가야 했다. 구글지도로 역에서 6분 거리인 호텔인데 길치인 내가 미로 같은 길을 감으로 찾는다는 게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도 어두워지고 똑같은 곳만 계속 돌고 있는 느낌이라 도저히 안 되겠어서 사람 찬스를 쓰기로 했다. 공항이나 지하철에는 일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물어보는 게 어렵지 않은데 뭔가 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시는 분도 전혀 못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감동받을 정도로 모두 친절히 알려주시고 근처까지 데려다주시기까지 하셔서 너무 감사했다. 왜 파리지엥들은 친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나부터 갖고 있던 편견에 미안할 정도였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결국 버티다 잠을 이기지 못하고 9시에 잠이 들어 버렸다. 일찍 잔 탓에 새벽 2시에 떠진 눈은 잠을 청해도 오지 않았다. 깜깜한 호텔방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자니 내가 파리에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