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치앙마이 2022.12-2023.01
교통 이야기
십여 년 전 방콕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수완나품공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맡는 동남아만의 향기와 분위기에 행복했던 마음도 잠시 시내로 가는 택시기사의 얕은 수로 나와 내 친구의 흥은 깨지고 말았다. 미터 계산을 확인하고 탔고 중간중간 미터기의 금액이 올라가는 것도 확인했는데 시내에 다다를 즈음 미터기를 꺼버린 것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한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였고 경찰서에 가자는 말로 모든 말들은 정리될 수 있었다. 처음의 기억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게 이때의 경험으로 태국은 나에게 자칫하면 흥정이 필요한 나라였다. 그런 기억을 갖고 다시 태국을 왔을 때 작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온 방콕은 교통편이 너무나 편리하게 변해있었다. 특히 지하철은 한국과 다를 것 없이 깨끗하고 배차 간격도 길지 않아 이동하기에 너무 편리했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그렇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버스 운행이 중단되어 사용할 수 있는 교통편이라고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난이도 최하인 그랩/볼트/인드라이브를 통한 자동차, 빨간 자동차로 불리는 썽태우(다른 노선은 노란색, 검은색등 노선에 따라 컬러가 다르다.) 뚝뚝 그리고 대중적인 수단인 오토바이 정도였다.
처음 성태우를 타는데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첫 번째는 바가지요금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여행 후기에서 보통 30밧이면 타는 성태우를 100밧 이상으로 냈다는 후기를 적지 않게 보았고 이전에 방콕에서 실랑이했던 기억이 있어 생각만으로도 지쳤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렵지 결코 어려운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게 뭐라고 그렇게 망설여진 건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성태우를 처음 탄 건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볼트 택시는 왜 항상 busy인 건지 busy로 안 뜨는 시간이 없었다. 십여분을 실랑이한 끝에 겨우 힘들게 잡았는데 내가 탄 차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시동이 켜지지 않아 택시에 앉은 지 일분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했다. 다시 택시를 잡으려고 했으나 계속 거절당했고 날씨는 덥고 얼른 숙소에 가고 싶었다. ‘어쩌지?’ 이러고 있는데 크락션을 울리며 빨간 성태우가 내쪽으로 지나가길래 손을 내밀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마냥 신나게 흔들리는 성태우를 타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침내 밀린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함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그날 하루의 지친 마음이 잠시 잊히는 것 같았다. 대신 뻥 뚫린 입구 덕분에 도로의 먼지와 매연을 먹는 건 각오해야 했다.
현대적인 님만해민, 역사가 느껴지는 올드타운
렌트비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런 점이 꽤나 끌렸었다. 치앙마이에 보름을 있으면서 총 세 군데의 지역에 숙소를 잡았었다. 올드타운 - 수텝 - 훼이 깨우 이렇게 지내면서 그 지역마다 교통편을 최대한 이용하지 않고 보기 위해 옮겨 다녔지만 지금 생각하면 굳이 숙소를 옮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많은 한국인들은 세련된 님만해민을 선호했지만 나는 치앙마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올드타운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매일 보는 스타일이 트렌디한 현대적 디자인이라 그와 반대되는 분위기가 더 끌렸다. 조금은 낡았지만 그대로의 모습이 치앙마이의 모습인 것 같았다.
음식 이야기
음식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여행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난 유럽 여행 때 짠 음식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향신료 이런 거 전혀 문제없는데 나는 짠 음식을 진짜 못 먹는다. 다행히 태국음식은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만큼 한국 음식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맛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브런치류의 음식이나 아메리칸 스타일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가격까지 저렴한 데다가 신선하니 매일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는 게 행복할 지경이었다. 특히 여럿이서 다양하게 먹어도 만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으니 갈수록 살이 안 찔 수 없는 환경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더운 나라에서는 조심해야 하는데 한 번은 노점상에서 파는 밀크티를 마셨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바로 탈이 났다. 물갈이 전혀 안 하는 나인데 실온에 놔둔 캔 멸균 우유가 아무래도 원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이후로 유제품은 조금 조심해서 먹으려 하긴 했지만 치앙마이는 유혹하는 음식들을 길에서 너무 많이 판다.
마켓
치앙마이 하면 야시장이 빠질 수 없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치앙마이였는데 매주 하는 야시장이라는 데도 관광객에 동네 주민들까지 몰리니 내가 걷는 게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걸어야 하는 상황일 정도로 야시장은 인기 있는 코스이다. 기념품을 평소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이고 맛있는 음식을 골라가며 먹을 수 있어서 재밌는 곳이다. 선데이마켓, 쎄러데이마켓, 러스틱마켓, 나이트바자 등등 너무 많은 야시장이 있고 조금씩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구경하는 맛이 있다.
친절한 사람들
여행의 기분과 감정은 좋은 사람들로 만들어진다. 액티비티, 볼거리, 맛있는 음식도 물론 그 여행을 평가하는데 큰 부분이지만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에 따라 여행의 척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 치앙마이는 태국 중에서도 사람들이 느긋하고 차분하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친절한 분들이 많다. 길 가다 눈 마주치면 따뜻한 미소로 인사해 주시는 어르신들, 지폐를 확인하지 않고 50밧을 드려야 하는데 500밧을 드리고 가게를 나왔을 때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와 잔돈을 거슬러 주셨던 분도, 말은 안 통해도 끝까지 도움 주시려고 했던 분들 모두 치앙마이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셨다.
치앙마이는
살아 보러 가는 곳이지 놀러 가는 곳은 아닌 것 같아요.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3,4일이 지날 때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 지라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하는지 공감이 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치앙마이가 좋아는 사람들의 글을 검색해서 읽어봤고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여유 있고 단순한 치앙마이의 일상을 즐기는 것이 이곳에서 할 일이라는 말에 이전까지 해왔던 여행 스타일을 버리고 치앙마이 스타일(?)로 지내보려고 했다. 그런 스타일로 지내고 있을 때쯤 혼자 노는 게 재미 없어지고 약간의 외로움이 찾아오는 시기가 왔다.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어 보고 싶고 지금의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평범한 일이 하고 싶어 진다. 용기 내어 혼자 여행 온 사람들끼리 만나는 자리에 참석했다. 이미 치앙마이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사람, 그냥 괜찮다는 사람, 나처럼 아직 이곳의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는 사람들 등등, 동행자 없이 치앙마이에 있다는 공통사 하나 만으로도 다른 연령대에 각기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 잘 통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갑자기 이곳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마음이 맞는 몇몇 분들과 남은 여행도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었다. 각자 즐길 때는 각자 즐기고 함께 하고 싶을 때는 모여 같이 저녁을 먹거나 했다. 2022년 마지막 해와 2023년 새해를 혼자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감사했다.
함께 여행했던 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다음에 또 치앙마이에 올 생각이 있어요?"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뭔가 사는 게 즐거운 치앙마이.
"글쎄요.. 여행지로 또 올 지는 모르겠는데 분명 한국 가서는 지금 생활이 너무 그리 울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곳에서 보냈던 일상 같던 여행의 시간이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