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임

NO.04_50만원을 무당에게 건네고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by 삼육오늘


가끔씩 사주를 보고는 했다. 딱히 믿는다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뭔가 믿기는 했으니깐 사주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신점 아닌 사주풀이를 봤던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이 힘든 시기가 언젠간 빛을 바라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잠시나마 온전히 나를 위해 고민하고 위로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맞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꾸준히 찾았던 걸까?


신점은 잘 믿지 않는 편이었다. 어릴 때 가본 적이 있었지만 내가 들어왔던 것과 달리 딱히 무당으로부터 명쾌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기에 나와 신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집이 세서 말해도 듣지 않을 거라는 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둥.. 여러 소리를 들었었다. 주변 친구들의 무당썰을 들으면 속속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해주던데 나는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이 평소와 다르게 상기된 목소리로 너~무 잘 맞는 무당이 있다며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건지 신나서 말하는데 솔직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의 길이 바뀐 지금 뭐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 찰나에 그런 무당이 있다고 하니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도 나와있지 않은 이런 시골 속 신당을 어떻게 찾아낸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랜만에 고층 빌딩이 아닌 탁 트인 푸른 논밭이 보이는 조용한 마을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젊은 무당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도 더 앳되보이는 남자는 찬찬히 이리보고 저리 봐도 무당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편안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티브이에서 봤었던 장면들처럼 휘파람을 불며 부채를 흔든다.

그가 나에게 처음 했던 말은 "이런 거 믿으세요?"였다. 뭔가 당황스러웠다. "믿으니깐 왔겠죠"라고 말했고. 그때까지도 믿긴 믿는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무당의 능력에 따라 믿을 수도, 또는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데 좋지 않다고 하고..

상담이 끝나갈 때쯤 나에게 슬슬 겁을 주는 말을 시작했다. 올해 이사 가면 안 됬었는데 이사 갔다며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터가 세다며 집에 귀신이 있다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사 간 이 집은 처음 볼 때부터, 이사 간 첫날부터 너무 편했고 잠도 잘 왔고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귀신이 있다고 한들 내가 거기 터보다는 센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근데 이런 게 가스라이팅인 걸까?


슬슬 상담 시간의 마무리가 될쯔음 갑자기 지금 삼재도 들어왔고 너무 안 좋으니 꼭 자기가 아니어도 서울에서 무당을 찾아 기도해 달라고 한다. '뭐가 어떻게 안 좋은데요?' 물었더니 그냥 쳐다보고 답해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장난치나? 싶었는데 계속 같은 말 반복하니깐 뭐에 홀린 듯 '진짜 안 좋나'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삼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감당하고 처리할 정도의 일들이었고 원래 인생이 좋은 일 나쁜 일 다 있지 않나 싶어 삼재에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뭔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안 좋으니 기도해야 한다고 밑밥을 까는데 점점 나도 모르게 '진짜 감당못할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하지'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두려워졌다. 착하게 생긴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 나도 모르게 더 진짜 일수도 있겠다고 바보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부적을 쓰라고 했다. 부적은 나름 천주교인으로서 (성당 안 간 지 20년도 더 되었지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팔찌를 하면 좋을 거라고 했다. 부적 느낌 나지 않게 집 인테리어도 하얀 거 보니 (우리 집 인테리어를 맞추긴 했다.) 팔찌도 깔끔한 거 좋아하는 내 성격처럼 디자인해 줄 거라며 안심시켰다. 그렇게 나는 내 미래를 위해 50만 원을 바로 입금해 버렸다. 이체하자마자 급격히 밝아지는 그 남자 무당의 모습을 보고 순간 아차 싶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찬찬히 그와의 대화를 다시 생각하보니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50만 원으로 내 인생을 바꿔주지도 못할뿐더러 뭐가 안 좋냐는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그 사람은 말로 나를 현혹시켰고 나는 그 말에 현혹당했다. 말 그대로 영업 잘하는 사람한테 씌어 저렴한 물건을 몇 십배 더 비싸게 구매하고 만 것이다. 아니, 정확히 필요 없는 물건을 구매하고 만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그 무당에게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기도해서 반밖에 돌려주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지만 순간 나한테 저주 퍼부을까 (물론 진짜로 그러지는 않겠지만..) 괜히 걱정돼서 기도 잘해서 보내달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내가 바보지... 영업왕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일 뿐..)


약속했던 날보다 늦은 열흘 뒤, 그 무당에게서 받은 팔찌와 염주를 보고 나는 확실하게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꼭 팔에 차고 다니라고 했던 그 팔찌는 차마 차고 다닐 수 없었고 서비스로 보내준 싸구려 염주는 우리 집 어딘가에 놔뒀다. 나는 50만 원을 쓰고 나 자신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내 미래를 점치는 것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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