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역사를 기록하자
빛이 한가득 쏟아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간간히 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다. 온 집안에 구슬픈 바로크 시대 오보에 연주가 흐른다. 아빠의 선곡이다. 아빠는 거실에서 한 바가지 가득한 도라지의 숨을 죽이고 있고 엄마는 주방에서는 뭘 하는지 끊임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언제 날 호출할까 노심초사, 이 평화가 조금 더 지속되기만을 바라니 라, 불행하게도 충분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부친은 소위 서양 고전음악에 한결같이 심취해있는데, 내 유년시절에는 그 정도가 특히 심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권위를 가진 자로서 시시때때로 기분에 따라 음악을 틀었다. 그의 표정은 대략 한결같이 근엄했다. 초등학교 다닐 당시 옆집에 살던 친구는 우연한 아침 우리 집을 찾았다가 밥상머리에 거룩히 흐르는 음악 소리에 충격을 먹고 이를 두고두고 회자했다. 부친의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늘 거실을 점령했다. 나와 모친은 단 한 번도 볼륨을 줄이라고 한 적이 없다. 모친은 부친과 동일하게 생계와 양육에 가사까지 책임졌지만 억울하게도 부친만 온 집안에 음악이 울려 퍼질 정도로 볼륨을 높일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취향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몸집이 작았던 나는 부친의 책상다리 밑에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젓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지휘를 해댔다. 거기가 온전한 나의 세계였다. 여적 살면서 그 정도의 무아지경 상태에 도달한 적이 있었을까. 절절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그 책상다리 아래서 돋아났다.
그에 반해 엄마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다. 종종 <얼굴>이라는 노래를 읊조리 듯 부르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멜로디도 가사도 엄마의 목소리도 어딘지 구슬픈 데가 있었다. 부친이 좋아했던 송창식이나 조용필의 노래를 그녀도 곧잘 따라 부르긴 했지만 그것이 모친의 기호와 아주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늘 부친이 선곡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습관처럼 고전음악을 찾아 듣고 내 세대의 노래가 아닌 송창식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건 부친의 감성을 체득하고 유년시절의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지만, 모친의 문화적 자산 내지는 감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아니 무관심했었다.
구슬픈 바로크 시대 오보에 연주를 비집고 엄마가 아빠를 향해 콩나물 대가리를 떼라고 소리를 친다. 구슬픈 바로크 시대 오보에 연주가 결국 끝이 났다. 이윽고 엄마가 경쾌하고 단호하게 날 호출한다. “커먼 베이비.” 나는 시키는 대로 두부와 무 곤약 따위를 성실히 썰면서 말했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당신의 구술사를 써보겠노라고. 모친은 “구술사?” 하더니 “그 역사는 너와 나만 공유해야 한다” 고 말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엄마를 꼭 닮은 내가 오롯이 엄마가 주인공인 엄마의 역사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