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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다. 지친 것이다

#명상시작며칠전

by 김경리

이 와중에 행복을... 요가 끝에 염불처럼 외는 ‘행복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우타나 아사나 자화상

생리 시작 예정일이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어제부터 유독 디저트가 당기고 생라면을 부숴 먹고 싶어지는 걸로 보아 시작일이 머지않은 것 같은데... 모르겠다. 그래서 요새 늘 만일에 대비하여 짐을 챙겨 다니며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매년 매달 매주 해도 참 적응이 안 된다. 큰 시험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규칙적인 리듬을 가진 편인데 아마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원인을 짐작해 보자면 지난번 휴일에 한 특강과 두 번의 대강 수업으로 스케줄이 평소보다 많았던 점을 짚어볼 수 있겠다.

이사 온 후 바뀐 스케줄이, 장거리 수업과 이른 오전 수업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지 항상 지하철을 놓칠 것처럼 불안하다. 배가 고프고 배가 부르게 먹으면 화가 나고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그렇다고 자리가 없으면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아프고 다리도 붓고 이래저래 총체적 난국이다. 이 와중에 행복을... 요가 끝에 염불처럼 외는 ‘행복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한 주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찾아오는 휴일이 그다지 편안한 것도 아니다. 잠은 일찍 깼어도 평소 더 자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후다닥 일어나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그대로 뭉그적거리며 몇 시간을 더 누워있다가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목이나 어깨가 쑤시면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서 세수하고 빵과 채소를 사러 나간다. 사온 재료들을 씻고 깎고 썰고 다듬고 정성껏 한상을 차려서 정말 한참 동안 먹는다. 이 식사가 그나마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후 설거지, 빨래 등을 하고 산책을 한번 하고 나면 어느덧 날이 저문다.

그러는 내내 마음 한 켠에는 뭔가 죄책감이 도사린다. 하루를 좀더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과 대체 새로운 글이나 그림을 언제 쓰고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미간이 구겨진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황금 같은, 그야말로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휴무일이 가버렸다는 황망함. 어쩌면 나는 쉬는 날이 오기 전까지 일주일치 나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수업 도중 요의가 느껴질까 봐 물을 적게 마시며 KF94 마스크를 쓴 채로 목이 잠기도록 말을 하면서 요가를 하고 수업과 수업 사이를 뛰어다니며 온종일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다니다 보면 확실히 지친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최소한의 활동을 하며 나를 점검하고 쉬도록 내버려 두는 날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애를 써서 지쳐버린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명상 시작 며칠 전에 쓴 일기, 이때는 명상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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