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자와 함께 걷는다

by 김경리

그런 시간이 있다
길을 걷는데 해가 뒤에서 비추며
눈 앞에 나의 그림자를 마주 볼 때가

먼지가 날리지 않고 약간 푹신해서
발목의 충격을 줄여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신소재 바닥이 깔린 산책로 위에
머리를 나풀거리며 걷는 그림자

오래전 회색의 골목과 노란 흙길을
걸을 때보다 조금 더 길어진 모습으로

많은 시간과 공간을 건너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운 날과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은 날들을 지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걷고 있는 내가 있다

시간에는 생채기가 남지 않는다
여러 계절과 사람들과 무수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그대로의 상처 받지 않은
스러지지 않은 내가 남아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싶은 날엔
아직 해가 거기에 있다면

해를 등지고 나의 그림자와 함께 걷는다
고단하고 지친 얼굴은 거기에 없다

처음엔 천천히
조금씩 빠르게
등이 따뜻해지고
숨이 가빠지도록

머리를 나풀거리며 걷는 그림자가 보인다
경쾌하게 걷고 있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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