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내기

엽편

by Joon

"그러니까 자네 말은 자네가 악마란 말이군."


보험 외판원처럼 말쑥한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를 향해 나는 말한다. 거실 탁자를 마주보고 앉아서 그는 자신이 악마라고 주장한다. 입가에 빙글 빙글 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천천히 답한다.


"쉽게 믿지 못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이런 상황에는 이골이 나있습니다."


손가락을 치켜드니 파란 불꽃이 손마디 끝에서 피어나고 언제 빼들었는지 모를 담배에 능숙하게 불을 붙인다. 유치하게 마술인가 타박하려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놀랄수 밖에 없었다. 사방에 모래만 보이는 황량한 사막의 한 가운데로 내 몸이 옮겨진 것이다. 이 와중에 연기를 내뿜으며 사내가 말한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그래. 알겠어. 악마라니 솔직히 황당하군. 대체 나한테 무슨 볼일인가?"


"악마가 잘 하는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내기입니다! 내기를 하러 온거죠."


"무슨 내기를 하고 싶은거지? 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야. 별로 원하는 것도 없단 말일세."


말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팔십 평생의 무게가 더욱 피로하게 느껴졌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건 곧 돌아가실 때가 가깝다는거죠. 그런 분을 위한 맞춤형 내기랍니다."


다시금 남자는 빙글 빙글 웃고 있다. 무슨 수작일까?


"내기는 간단합니다.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를 두고 거는 것입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존재한다에 걸고 반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다에 걸면 됩니다."


"선택지가 두개 밖에 없다니 그나마 편한 내기로군."


"그렇죠.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무신론자입니다. 평소의 생각 그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걸어도 좋습니다. 그 경우에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죽음 뒤에 영원한 휴식이 찾아오겠지요. 하지만 신이 존재하고 있다면 상황이 좀 심각해집니다. 선생님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 뒤에 영원한 지옥불에 시달리게 되는겁니다."


"그럼 내가 생각을 바꿔서 신이 존재한다에 걸면 어떻게 되는건가?"


"오. 회개를 결심하는건가요?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신이 존재한다에 거는 경우라면 딱히 잃을 것은 없습니다. 대신 얻을 것도 없죠. 하지만 실제로 신이 존재하는 경우 선생님에게 생기는 일은 말이죠."


남자가 눈을 찡긋한다.


"대박입니다. 죽음 뒤에 바로 천국행 열차를 타고 가는거죠. "


곰곰히 따져보면 모두 네가지 경우가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거는 경우.

1.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

2.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지옥행이다.


신이 존재한다에 거는 경우.

3.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

4.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천국행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편에 거는게 압도적으로 유리해보인다. 어떻게 할까. 사실 무신론은 내 오랜 친구와 같다. 친구가 오래 되면 그 친구의 존재에 그냥 익숙해지게 된다.


"자네가 말하는 신이라는건 대체 어떤 신인가? 기독교의 신인가? 아니면 다른 종교의 신인가? 설사 내가 신이 존재한다고 걸어도 그게 엉뚱한 신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나? 그 경우 진짜 신이 엄청 화를 낼 것 아닌가?"


"좋은 지적입니다. 특정한 신의 존재를 제안한다면 이 내기는 너무 불공평한게 되겠죠. 저는 그저 어떤 신이든 좋으니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만 내기를 걸고 있어요. 기독교의 신이든 힌두교의 신이든 존재하기만 하면 결과에는 상관 없는거죠."


남자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 언듯 네개의 팔을 가진 신상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궁금하군. 이런 식으로 내기의 결과를 따져보고 나에게 유리하니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 해도 별로 순수하지 않잖아. 내가 신이라면 못 마땅할것 같아."


"그런 것도 신에 대한 편견이죠. 신이 합리적 선택이 내려지는걸 보기 좋아하는 존재라면 오히려 그런 선택을 기뻐할수도 있는겁니다. 아무래도 걱정되면 그 부분도 내기의 조건에 포함시켜두죠. 선생님은 그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서있는 장소가 또 바뀌었다. 발밑에 있는 피라밋과 앞에 있는 스핑크스를 보며 남자에게 묻는다.


"악마가 있다면 신도 있지 않겠나? 자네의 존재 때문에라도 신이 있다고 걸어야 할것 같네만."


"하하. 악마가 있다는게 꼭 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는건 아니죠. 우리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신의 악취미일수도 있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할수도 있는겁니다. 자. 이제 더 이상의 질문은 사양합니다. 결정을 내리시죠."


마지막으로 나는 생각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내가 거는 것에 따라 천국이거나 지옥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영원한 휴식이 있을 따름이다.


어디에 걸 것인가. 나는 조용히 남자에게 결정내린바를 전한다. 남자는 품에서 보험 계약서 같은 용지를 꺼내서는 형광색으로 된 곳에 서명을 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용지에 서명을 하고 돌려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기가 성립되었다고 말한다.


"내기 결과는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될때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우리 다시 보게 될른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웃음 소리가 잦아들며 고개를 드니 익숙한 우리집 거실이다. 아무도 없는 탁자 위에 피우다 만 담배 꽁초 하나만 재떨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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