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도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탄생
강가에 정렬한 많은 병사들이 정렬한 채 대기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시선은 화려한 휘장으로 한껏 멋을 낸 배에 탄 귀족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정작 귀족들은 병사들이 자신들을 응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서로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귀족과 병사 사이로 협상을 하는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요? 시선을 강 뒤로 옮겨 보겠습니다. 강 뒤편 언덕 넘어 또 다른 무리의 병사들이 있습니다. 성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거 같습니다. 전투와 협상이 오가는 혼란인 상황에 관심 없어 보이는 귀족들의 모습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와트 타일러의 난
그림은 와트 '타일러의 난'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381년에 잉글랜드를 휩쓴 대규모의 농민 민란입니다. 발생원인은 흑사병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의 붕괴, 정치적의 불안정, 백년전쟁으로 인한 높은 세금 등 다양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1381년 왕실에서 미납된 인두세를 걷으려 한 사건이었습니다. 열약한 환경에 시달렸던 농민들의 반발로 인두세 징수 시도는 폭력적 충돌로 끝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다양한 농민들이 봉기에 동참하였고 세금 경감과 농민들의 권위, 고위 관리와 법관들의 제거를 요구합니다.
흑사병이 바꾼 경제 구조
흑사병은 유럽의 경제 구조에 변화를 만듭니다. 봉건제는 소작농의 생산력을 이용하여 귀족 계층이 부를 누리는 경제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함에 따라 갑자기 토지가 풍부해지고 반대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는 귀한 몸이 됩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몸값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결국 노동 임금은 크게 상승합니다. 이제껏 토지를 소유하며 농민을 지배하던 영주들의 고민이 커져갑니다. 농민을 일하게 만들려면 더 많은 돈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이로 인해 지주들의 이익은 감소를 초래했고 마을 단위의 경제 네트워크는 붕괴됩니다. 흑사병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농민들은 권위가 상승하고, 주인에게 얽매여 노예처럼 살려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영주와 농민의 관계가 깨지면서 유럽은 새로운 경제구조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영주들은 임대료를 받거나 목축업을 자연스럽게 변화하였고 결국 1500년경 봉건제는 사라지게 됩니다.
부르주아의 탄생
흑사병은 신분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중세 권력의 중심은 왕과 봉건영주, 성직자이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노동력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고 새로운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시장과 화폐 경제, 교역의 시대로 변화한 것입니다. 화폐 경제는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합니다. 부르그(bourg)란 당시 새롭게 생긴 상공업 도시를 뜻하는 말이고, 부르주아는 그곳에 사는 상공인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주의의 발달과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흑사병은 경제 구조를 바꾸고 도시로 진출한 농민들은 상업 발달과 함께 부르주아로 탄생합니다.
신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