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맨이 남긴 우리들의 자화상

튀는 못이 뽑혀 나간 자리에 대하여

by 인문 도슨트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마침내 공직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파격적인 혁신의 아이콘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조직 내부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7년 만에 6급 승진이라는 성과가 ‘암적인 존재’라는 가혹한 수사로 되돌아왔으니 말입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빈 책상이 아니라, ‘튀면 죽는다’는 서늘한 교훈을 다시금 확인한 남은 자들의 침묵이 아닐는지요.


공직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어쩌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태엽 시계와도 같습니다. 이곳에서 미덕은 ‘속도’가 아니라 ‘순서’이며, 탁월함보다는 무난함이 가장 강력한 생존의 방패가 되곤 합니다. 모두가 20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견뎌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을 때, 홀로 고속 회전하며 시계의 분침을 앞당겨버린 존재는 경이로움이기에 앞서 시스템의 안정을 해치는 이물질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성과는 분명 탁월했으나, 모호한 평가 기준 속에 던져진 그 파격적인 보상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공정이 아닌 불안이라는 낯선 감각으로 다가왔을 테지요. 투명한 설명 없이 주어진 보상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아니라 박탈감의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요.


미셸 푸코가 지적한 규율 권력은 감시를 통해 구성원을 균질화합니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부르는 법이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조직은 다름을 허용하기보다 평균으로의 회귀를 종용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영토에서 거둔 승리가 내부에서는 ‘순환 근무의 열외’나 ‘특혜’로 읽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성과를 측정하는 투명한 저울을 아직 갖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혁신가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떠나버린 지금, 남은 구성원들이 냉소로 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기 방어기제일 것입니다.


여기에 참으로 뼈아픈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혁신과 변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그 변화가 나의 오랜 기다림과 순번을 위협할 때는 가차 없이 배제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충주맨이라는 현상은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비추는 거울이었으나, 정작 그 거울이 깨지기를 바란 것은 그 속에 비친 초라한 자화상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우리 자신은 아니었을까요. 성과가 보상이 되는 당연한 인과율이 특혜로 변질되는 조직에서, 혁신은 권장되는 가치가 아니라 피해야 할 위험한 도박이 되고 맙니다. 결국 혁신가는 고립되어 떠나고, 나머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역시 나서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냉소적 지혜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제 소위 ‘암적인 존재’가 제거된 조직은 다시금 고요한 평화를 되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생동하는 건강함이 아니라, 더 이상 아무도 튀지 않으려 하는 적막한 고사(枯死)의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혁신가가 떠난 자리에 남은 우리가 변화보다는 안주를, 도전보다는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비극이 아닐는지요. 우리는 지금 가장 시끄러웠던 혁신가를 떠나보내며, 가장 조용한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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