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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도슨트 May 08. 2020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인사담당 과장의 육아휴직 도전기

나는 누규?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싸가지 왕자 대접 한번 못 받고, 부모님이 일찍이 공부는 자율학습이라며 손을 놓으셔서 자율적으로 중간은 했고, 일찍 가장이 노릇을 해야 했기에 군대 면제받는 신의 아들이 됐고, 그 신의 아들은 놀지도 방황하지도 못하고 바로 취업을 했고, 한 직장에서 20년을 충실하게 다니는 프로열심러이고, 29살에 자신 있게 결혼할 거라는 포부는 조용히 쓰레기통에 넣어 감춰두었고, 서른 중반에 우연히 한 미모 하시는 29살 아가씨 포섭에 성공해 결혼을 하고, 쌍둥이 나아 잘 키워보자 했던 패기는 패기에 그쳤고, 열심히 산거는 인정해 주셨는지 예쁜 공주 하나 선물로 주셔서 딸바보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도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회사원이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지독한 역경이 찾아오다

회사 계열사에서 10여 년간 인사담당자로 일하던 나에게 어느 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회사 본부에서 인사담당자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본부가 어떤 곳인가? 조직 내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하는 사람들의 모집단이 아니던가? 반장 한번 못해본 나는 잔뜩 어깨뽕 장착하고 동료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온몸으로 다 받고 본사에 입성한다. 드디어 인생에 정점을 향해 가는구나 생각하는 나에게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지독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한 조직환경과 일은 우주 안드로메다만큼 다른 거리를 갖고 있었다. 난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고,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한 대가는 스트레스 손님이 최악의 건강상태를 선물해 주었다. 워낙 말이 없는 성격에 나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문제를 누군가와 털어내도 못했다. 나를 유일하게 위로하는 것은 酒님 뿐. 취해 들어가는 날을 하루하루 차곡차곡 쿠폰을 적립했고, 하나뿐인 나의 공주님은 아빠에게 관심이 1도 없었다. 그런 딸내미가 원망스러워 자주 울고 사랑하는 아내와 감정은 조금씩 선을 넘고 있었다. 그렇게 난 스트레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한잔하고 늦은 밤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푸념을 털어놓는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딸내미는 아빠에게 오지도 않고.." 여전히 아빠를 찾지 않는 딸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왜 딸이 당신에게 가지 않는지, 당신이 거울로 자기 모습을 직접 봐바요" 몇 개월간 잘 인내해줬던 아내의 말에 난 한참을 멍해 있었고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었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서럽게 울었다. 서럽게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담아두었는지 아내는 나에게 "자기가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둬도 괜찮아요. 사람이 중요하지 우리 식구 못살겠어?" "당신 그동안 너무 고생한 거 같아..  이제 좀 쉬어요"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 말에 난 더 펑펑 울었다. 아마도 그런 위로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괴물'이 되어 버린 가장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육아휴직을 내기로 했다. 


대표님! 저 육아휴직하겠습니다.

"인사담당이 육아휴직을 냈다고?"

"그렇다니까.."

"휴직을 왜 낸 거야?"

"로또 맞았어?", "암 걸린 거야", "적응 못한 거야", "이혼한 거야?"

"이민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 나도 자세히는 몰라"


험담은 대상자 몰래 잘근잘근 씹어야 제대로 맛난 요리가 되는 법. 나도 모르는 사이에 로또 당첨된 부자도 되고, 암 환자가 되기도 하고 졸지에 이혼남이 되기도 했다. 나는 만여 명이 넘게 근무하는 큰 회사 본부에 근무하는 인사담당자였다. 우리나라 회사에서 남자, 그리고 인사담당자가 육아휴직을 낸 케이스는 몇 % 나 될까? 회사에서는 처음 발생한 남자이며 인사담당자가 낸 육아휴직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스카우트되어 얼마 다니지 않는 나는 '괘씸죄'가 500%로 더해졌을 것이다. 육아휴직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은 내가 해냈다. 내 속도 모르는 동료들은 한없이 부러운 눈길을 화살로 쏘았고 윗분들은 괘씸의 눈 화살로 쏘았다. 과연 무슨 배포였을까? 다~ 계획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쉬고 싶었다. 간절하게.. 그렇게 난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두려움에 쫄았지만 육아휴직을 내고 승인을 받기까지 내 심장은 하루하루가 쫄깃쫄깃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낸 다음 놀라운 기적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나를 외면하던 공주님은 기적처럼 아빠에게 안겨 하루하루 애교 선물세트를 풀어놓았다. (퇴근 후 나를 반기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눈빛과 애교를 허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석 같은 아이가 일찍 잠들면 부부의 은밀한 밤이 시작된다. 못 보았던 영화를 새벽까지 보고 와인도 털어 넣고

어찌나 수다쟁이가 되던지 과연 40년간 난 내가 아닌 누구로 살았던 것일까?

매일 5시 30분이던 기상시간에 자동적으로 눈을 떴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여유로 다시 잠드는 호사를 누리고

꽃시장에서 집안을 화사하게 장식해 줄 예쁜 꽃님들도 한가득 모셔오고

신이 선택된 자에게만 허락하신다는 낮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 세상의 여유로움을 몸소 느끼고

육아휴직 후 처음 간 제주도 여행지에서 딸하고의 인생 사진을 건지고

우리 가족은 일본,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으로 매월 여행을 나가고

(남는 건 시간뿐! 남는 시간이 무기다! 연휴를 피해 여행을 간다면 비행기 표값은 반값이라는..)

해외여행을 자주 나간다는 소식은 주변에 알려져 부러움을 한 가마니 가득 먹고

지인들이 국내에 있는 시간을 알려달라며 내 일정을 묻고

예술의 전당 11시 클래식 콘서트를 보며 관객 중 내가 제일 젊구나 위안을 받고

도대체 휴직 중 돈이 어디 있어서 그리 해외여행을 다니냐며 혹시 로또 맞은 거 아니냐는 기분 좋은 오해도 받고

그렇게 1년을 생애 처음으로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고

감사하게도 돌아갈 직장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회사 밖으로 나와 나를 돌아보니 조직 탓, 남의 탓이라고 생각했던 '남 탓'병이 '내 탓이오' 긍정병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다시 발령받은 곳이 천생연분 궁합을 맺어준 팀일 될 줄을 점쟁이도 몰랐을 것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던 육아휴직 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육아휴직을 망설이시는 직장인에게..

전기를 쓰지 않는 날에도 꽉 꽂혀 있는 '전기 플러그'. 돼지 콧구멍에 처박혀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아마 오래 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묵묵히 돼지 콧구멍에 처박고 열심히 전기를 충전하고 있다. 언제 쓸지 모를 전기를 위해서 말이다.  녀석은 곧 과부하로 정전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분리수거되어 버리지게 될 것이다. 그냥 열심히 꽂혀 있던 죄로 말이다. 내가 돼지 콧구멍에 항상 처박혀 있던  '전기 플러그'였던 것이다. 


전기를 쓰지 않을 때 전기 플러그도 전기코드에서 빠져나와 쉬어야 한다. 방바닥을 뒹굴며 가전제품 귓속에 숨어 낮잠을 자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즐겁게 전기를 쓸 때 기꺼이 돼지 콧구멍으로 들어가 전기를 쓸 수 있다. 누구나 하루 한 번은 아니 며칠은 아니 몇 주라도 퇴근을 해야 한다. 

인사담당자이자 남편이며 한 아이의 아빠인 나도.. 


육아휴직을 낸다고 하니 주변에서 식사를 하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질문은 모두 한결같았다. '왜 육아휴직을 하나요?', '다른 계획은 있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결같은 대답이 이어진다. '부럽다'. 직원 한분과 식사를 같이 했다. 그분은 내게 당신도 육아휴직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그분에게 질문했다.

"그럼 OO님은 왜 유아휴직을 못하세요?"

"회사에 미안해서요..","팀원들에게도 미안하고..", "또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다시 내가 물었다. "가장 미안한 대상이 누구인가요?"

"회사에 가장 미안하지요.." 그렇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 마음이 것이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전 저에게 가장 미안하더라고요. 그리고 가족. 그리고 회사에게도 많이 미안해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 난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선택을 마흔이 넘어서야 했다.

육아휴직을 망설이시는 직장인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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