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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도슨트 Jun 01. 2020

거머리는 무섭지만 벼 모심기는 하고 싶었어

발도르르 학교 아이들의 벼 모심기

까만 팬티스타킹을 입고 그 위에 반바지로 레이어드 한다. 얼굴과 목에 썬크림을 잔뜩 바르고, 손에는 쿨 토시 장착! 선그라스로 슬슬 침침해져 오는 눈을 보호하고, 모자로 얼굴 가리기! 마지막으로 등산용 수건을 세모로 곱게 접어 두꺼운 목에 안착시킨면 준비. 끝!!!

무슨 상황일까요? 전 지난 주말에 반평생 처음으로 벼 모심기를 했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농사 수업을 합니다. 제 아이는 2학년이지만 내년 농사를 미리 체험하기 위해서 3학년 언니,오빠들과 함께 벼 모심를 하였습니다. 제 가족 모두 출동하여 아이는 모를 심고 엄마와 아빠는 아이 뒤에서 모를 잘 심을 수 있도록 벼 모종을 아이에게 건네 줍니다. 도시에서만 사는 저와 아내는 처음으로 벼 모심기를 할 수 있었고 논에 발이 쭉쭉 빠지고, 거머리가 있을지 모르는 불투명한 흙탕물에 손을 넣으면 쫄깃한 심장 조임을 즐겁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 3학년 아이들의 한해 가장 비중 있는 수업은 농사, 집짓기, 수공예 등을 경험합니다. 농사는 1년 시간의 흐름에서 자연의 변화를 아이들이 직접 관찰학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활동입니다. 농사를 한다는 것을 자연을 돌보는 일이며 자연과 아이와 동일한 존재인 것을 알아가는 시기입니다. 아이들은 땅을 고르고 씨앗을 받아 모종을 키워 땅에 직접 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가꿉니다.


3학년 아이들은 이전의 세상과 나를 동일하게 인식했던 시기를 벗어나 자신과 세상을 분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러한 시기를 ‘루비콘강을 건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학년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속 변화를 창조신화를 통해 경험하고, 농사, 집짓기, 수공예를 배우며 인간의 삶을 경험합니다.


가을이 되면 아이들이 직접 키운 쌀을 추수하여 학교 아이들과 밥을 지어 먹습니다. 자연이 준 소중한 선물을 먹고 마실 때 매일 기도를 하며, 직접 키운 쌀밥을 먹고 재잘재잘 자랑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기뜩하기만 합니다. 학교와 아이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벼 모심기를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한해동안 이야기 꽃을 피울 씨앗을 심었습니다. 아이는 오늘 그림 도화지에 멋지게 해낸 자신의 모심기를 그림으로 담아 놓습니다. 

발도르프 학교 아이들의 벼 모심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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