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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5. 2023

작곡을 하고 싶었다

작곡을 하고 싶었다. 피아노를 치는 걸 좋아했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작곡이었다. 작곡과에 들어가려고 맘먹은 순간, 아빠에게 말했고 아빠는 당시 집에 피아노도 없었던 형편에 자식을 음대에 보내는 것이 무리가 될 걸 알면서도 허락해주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빠는 허락해줬을 뿐 아니라 레슨 선생님을 알아봐주고 그 선생님과 함께 직접 공장으로 가 소리좋은 피아노를 고르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해 돌아가셨다.

처음에 레슨 선생님은 일단 나를 테스트해볼 요량으로 자기집에 불렀다. 선생님은 대학원생이었다(레슨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치고 있던 악보가 있으면 가져오라 해서 나는 집에 있던 ‘소나타 앨범’과 ‘바흐 인벤션’을 가져갔다.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 모차르트와 바흐라니,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쉬워 보이나 절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쇼팽 왈츠를 가져갈 것을..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나는 역시나 매번 틀리던 구간에서 버벅거렸고, 가장 쉬운 바흐 인벤션 1번을 맘대로 쳐냈다. 선생님은 속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청음 테스트, 선생님이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면 나는 뒤돌아선채 그 음이름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있었다.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절대음감처럼 몸에 배어있었다. 거의 맞춘 것 같다. 시창 테스트와 작곡 테스트까지 끝냈다. 선생님은 예상외로 빨리 끝내버린 내 짧은 곡을 보면서 ‘음.. 행진곡풍이네.’ 하고 말씀이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의 다른 모든 부분은 형편없지만 청음만은 잘해서 그거 하나로 날 제자로 받아주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돈이 필요했을수도 있다)

나는 어쩌다가 마음속의 말을 꺼낸 것 하나로 작곡을 공부하게 되었다. 물론 아빠는 진짜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사춘기 사람에게 그런 질문에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리라 기대한 것은 오산이 아닐수 없다. 나조차 나를 모르고 그저 충동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동안, 하농 연습 숙제와 대위법 문제풀기 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손놓고 있다가 무작정 가서 선생님이 쳐보라고 시키면 임기응변으로 화음을 쳐냈다.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챘다. 내가 집에서 연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 끝이 어떻게 될지도 아셨을 것이다. 이 녀석은 생각이 없구나, 그렇게 진지하지 않아. 작곡이건 뭐건 뜻이 없고 전혀 성실하지 않은 학생이야. 지속하기 힘들겠어.

선생님의 집은 멀었다. 약 두시간정도로 느껴지는 먼 거리를 차를 갈아타고 가야했다. 가면 선생님의 어머니는 간단한 간식을 내 주셨다. 성실해보이는 선생님과 인자한 어머니, 집이란 건 이런거지 생각하며 약간 부러운 마음이었다. 선생님은 얼굴까지 예뻤다. 선생님의 방은 얼마나 밝고 단정했던지. 항상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은은히 흐르는 책상위엔 선생님이 공부하던 작곡법 책이 펼쳐져 있고 그 위를 스탠드 불빛이 정교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기를 두세달 하다보니 나나 선생님이나 왜 이걸 하는 건지 모를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아버지라고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잘은 모르지만 집안 사정도 그렇고 어차피 지속하지 못할 바에야 레슨을 끊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간 수업날 선생님과 선생님의 어머니는 미묘하게 표정이 달랐다. 아버지의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그늘을 드리운 것 같았다. 선생님의 어머니가 마지막 수업이라고 떡볶이를 해주시고 싶어하신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고,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이니 레슨보다는 같이 플륫 이중주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악보를 꺼내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피아노를 치고, 선생님이 플륫을 부는 것이었다. 플륫까지 부시다니, 정말 완벽하다 속으로 생각하며 악보를 보았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학생의 마지막 수업을 위해 선생님이 생각해내신 그 제의를 나는 의외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을 알았다. 나는 초견을 잘한다. 처음 보는 악보를 쳐내는 능력이다. 하지만 두번째부터 헤맨다. 우리는 같은 곡을 세 번 연주했는데 선생님은 왜 처음 쳤을때보다 갈수록 못치냐고 의문을 표하셨다. 그러니깐 말이에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레슨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무엇이 나의 맘을 짓누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이라는 것이 마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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