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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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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Oct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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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슈만은 46세에 죽었고 아버지는 47세에 죽었다

외할머니는 80세까지 사셨고 외할아버지는 82세까지 사셨다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남편도 살아있다

시부모님도 건강하시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문득 아버지의 기일을 생각해냈고

그것에 대해 친구와 잠시 얘기하다가

전화를 끊고 나선 다시 잊어버렸다

밤이 되어서야 기일에 대해 생각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때는 제사도 지냈고

미사도 드린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에겐 미안하다고 이젠 그만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기일에 모일 수 있는 가족들끼리 모여 식사나 하고 차나 마시며

고인에 대해 기억하는

시어머니쪽 관례에 대해 말한다.

기독교라 원래 제사는 안 지내고 그렇게 하신다고 한다.

친구의 남편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죽으면 다 끝난거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엄마의 기일을 챙겨야하는 날이 오면

난 뭐라도 할 것 같다.

엄마 바램대로 꽃이나 꽂아두고 커피나 마시며 엄마를 추억해야할까

난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다.

7살때 헤어져서 성인이 된 이후에 다시 만났지만

사는 나라가 달라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았다.

처음 다시 엄마를 만났을때 아주 낯익은 느낌이 들었고

며칠 같이 지내는 것도 편안했지만

습관처럼은 되지 않았다. 연락하는 것이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엄마에겐 잘못이 없다.

나에게도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모든 건 아빠의 잘못이다.

참 단순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빠와도 깊은 속내를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아빠는 다 아빠 잘못이라고 나중에 내가 성인이 되면 다 얘기해준다고 해놓고선

내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물어볼수가 없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

아마 살아계셔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지난 상처를 들추어내면 또 감당해야할 부분이 생기니까.

내가 아빠에게 이제와서 감사해하는 것은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해 준것과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아빠가 그때 돌아가심으로서

나는 알콜중독으로 피폐함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아빠의 모습을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다.

친가와도 맘편히 연락을 끊고

우리 가족만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

인간의 도리라고

억지로 그들의 얼굴을 마주대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참으면서

아빠의 노년을 돌봐드리는 일같은 것에서도 자유롭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거지.

아빠는 내 눈물버튼이다.

이제 내가 아빠가 돌아가신 나이쯤 된 것 같다.

한 오년전부터 정확한 나이를 세는 걸 피해왔다.

딸이 가끔 알려주지만

기억하지 않으려하고 있다.


나는 단지 아빠보다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나는 단지 엄마보다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내가 얻은 행복은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다.

그들의 불행은 그들의 운이다.

어떤 사람은 사라져가고 어떤 사람은 산다.

어떤 사람은 살아서 불행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행복하다.

엄마는 가끔 꿈에서 아빠에게 주먹을 휘두른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한번도 맞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아빠의 잘못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평생을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다가

어느날 알수없는 힘에 의해

그렇게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나의 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아빠의 곡 역시 나를 통해 진행중이다.

엄마의 곡 역시 나를 통해 흐르고 있다.

이제는 나도 내 곡의 후반부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름답지도 비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유머러스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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